결혼하고 9년 후쯤에 일을 찾아 나갔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을 찾는다 해 봐야 기껏해야 외판이었다. 처음 시작한 외판은 학습지, 영어테이프 같은 거였다. 그러다 같은 외판원들의 소개로 책 외판도 했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책 외판은 잘하면 꽤 괜찮은 수입이 생기는 일이었다. 그 세상에서 잘 파는 사람은 한 달 수입이 얼마라며 세일즈왕 운운하며 신문에 실리기도 하는 시대였다. 내가 책을 좋아하니 한 번 해보자 싶었다. 고객과 책 이야기도 하며 독서 나눔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책 좋아하는 것과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외판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일가친지를 찾아가서 팔게 되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 그 후부터는 낯선 집 문을 두드려야 된다. 지금은 온라인 판매로 외판원이 거의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외판원이 문을 두드리는 횟수가 하루에 서너 번도 되는 시절이었다. 문을 안 열어주는 집이 다반사다. 때로는 회사에서 소스를 주기도 해서, 그 주소를 찾아서 가는 경우는 그래도 문전박대는 안 당하는 경우다. 나머지는 흔히 말하는 ‘개척’이란 것이다. 2인 1조로 낯선 동네를 찾아가서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눌러야 된다. 열 집 문을 두드리면 한 집이 문을 열어주는 확률 정도라 해 두자. 여름에는 땡볕 속을 걸어 다녀야 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발이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수확이 있는 날은 기쁜 날이다.
그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왔다. 마음 통하는 동료와 함께 지역을 정하고 그 동네 버스 정거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동네는 그 당시만 해도 꽤 부유촌에 들어갔다. 그런데 친구가 안 나왔다. 정거장에서 떨며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 지금처럼 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다. 근처 공중전화를 어렵게 찾아가서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씩씩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다며, 지금 나갈 상황이 아니라며, 지금 전쟁 중이라 했다. 동료는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며 자주 호소를 하곤 했는데, 지금 뭔가 대단히 크게 터진 것 같았다. 어쩔 것인가? 혼자서 다니기에는 아직 경험 부족이었고 용기도 안 났다. 날씨도 너무 추웠다. 그러나 집에서 먼 동네까지 왔다. 바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허무했다. 혼자서 몇 집이라도 돌아보자 생각했다.
부자동네라 담들이 모두 높았다.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집들은 내 눈에는 작은 성처럼 보였다. 초인종을 누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에서 기웃거리다 그냥 통과하기를 몇 집, 어느 집이었다. 문이 빼꼼히 열려있다. 용기를 내어 쓱 밀고 들어갔다. 넓은 정원이 나왔다. 조용했다. 입구에서 계세요? 작은 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기척이 없다. 조금 더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꽉 닫힌 넓은 거실 창문이 보인다. 두어 발 더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불렀다. “안에 계세요?” 하고.
그때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아기 소 덩치만 한 커다란 개가 천둥소리를 내며 달려 나왔다. 너무 놀라서 뒷걸음 치기도 전에 개는 펄쩍 뛰어오르는 듯하더니 내 허벅지를 물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 가까운 소리가 질러진 것 같다. 창문이 드르륵 열리는 것 같더니 어떤 아줌마가 튀어나와 개에게 달려들었다. 목에 걸려있는 쇠줄을 잡아 당기며 개를 야단쳤다. 개는 아줌마의 폭력에 나를 놓아주었지만 한동안 으르렁대다가 아줌마의 거듭되는 부드러운 손길에 온순해 졌다. 순간, 아팠는지 안 아팠는지 기억이 안 났다. 너무 놀래서 찔끔 울었던 기억이다. 다리를 봤다. 피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오늘 춥다고 내복도 담으로 된 내복에 바지도 속에 털이 들어있는 두꺼운 바지를 껴 입었는데 그 덕을 본 듯했다.
개를 진압시키고 난 뒤, 아줌마가 낯선 침입자인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갑자기 부끄러웠다. “아, 문이 열려있길래요.. 책 외판원인데 혹시 필요하신 책이 있으신가 하고.. 죄송합니다” 하며 얼른 돌아 나오려 했다. “아.. 아줌마가 마트 간다고 잠시 문을 열어났나베. 추운데 일단 들어오세요” 한다. 그냥 나는 부끄러웠다. 남의 집에 느닷없이 들어와서 개에게 물리고, 적막 같은 집을 소란스럽게 하고, 그냥 나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몸은 아줌마를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30대 중반이었는데 아줌마는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셨다. 내가 안 돼 보였거나 개에게 물린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줌마의 안내로 거실로 들어갔다. 집에는 아줌마 혼자였다. 거실이 넓었다. 넓은 거실인데 후끈할 만큼 따뜻했다. 속으로 기름을 얼마나 때기에 이렇게 따뜻할가 생각했다. 밖으로 나간 아줌마란 부인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린다. "아줌마! 나갈 때 대문을 닫고 나가야지, 문을 그렇게 열어 놓으니까..." 밖에다 대고 크게 외친다. 갑자기 또 부끄러웠다. 죄인처럼 앉아 있는데 일하는 아줌마가 차를 내어 오셨다. 차를 마시라 권하면서 다리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리를 봤다. 겉으로는 아무 표가 없다. 그런데 안에서는 피가 좀 배어있는 듯, 내복이 살에 딱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자리에서 30권짜리 대 백과사전을 팔았다. 외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게 큰 책을 팔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로 팔았다. 아줌마는 “젊은 사람이 살라고 참 애 많이 쓰네요.” 하셨다. 그 말이 그 당시에는 동정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일단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쁠 뿐이었다. 그 집을 나와서 오늘 하루는 이것으로 되었다 하며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 다시 공중전화있는 곳을 찾아가서 우리 팀장에게 오늘의 나의 수확을 보고 했다. 팀장이 환호를 울렸다. 밥을 살 테니 집으로 바로 가지 말고 회사로 오라고 했다. 그때서야 내 다리를 생각했다. 밥 얻어먹으러 갈 때가 아니다. 다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봐야 한다. 느낌으로는 피가 조금 더 배어 나온듯, 좀 더 넓은 부위로 내 살과 내복과 겉옷이 붙어있는 것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50여 분은 걸리는 거리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잠그고 바지를 벗었다. 느낌대로 바지 안쪽과 내복과 살이 스며 나온 피로 붙어있다. 겉 바지는 쉽게 벗었는데 내복을 벗을때는 많이 아팠다. 오른쪽 무릎 바로 위였는데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무릎을 물렸으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피가 조금 스며 나와 엉겨붙어있고 그 주위가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엉겨붙어 있는 곳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닦아내었다. 이빨에 찍힌듯한 작은 자국이 보인다. 순간 와락 소름이 끼치긴 했다. 개의 이빨이 두꺼운 바지와 내복을 뚫을 만큼 날카로웠단 말인가? 놀란 마음에 물린곳과 멍이 번지고 있는 주변에 병에 남아있는 알코올을 다 부어서 허벅지를 닦아내고 피가 나온 자리에 아카징키를 발랐다. 오늘 많이 추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에 여름이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래도 내일 병원 가서 주사는 한 대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은 그때 세 살이었다. 오빠하고 일곱 살 차이다. 나이 차이가 많아서 친구가 될 수없고, 내가 나갈 때는 할머니 품에서 잘 놀고 있을 때다. 약하고 순한 아이다. 그날은 이상하게 칭칭대었다. 달래려고 손 만 대면 울었다. 저녁을 어머니가 맛나게 만들어 놓으셔서 나는 밥상만 차렸다. 밥상 앞에서 어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저녁 하는데 어찌나 보채고 달라붙던지 간장 한 병을 다 깨빡쳤다 아이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직도 냄새나제. 저 가시나 옷에 반은 부어졌을꺼다. 씻기는데 안 씻을라꼬 울고 불고 아이고오.” 아.. 나는 또 죄인이 된다.
저녁을 일찍 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다. 아이 겉옷을 벗기는데 자지러지게 운다. 피부에 뭐가 생겼나 싶어서 내복을 치켜올려 봤다. 기다란 붉은 자국이 긁힌 것처럼 줄이 죽죽 나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옷을 벗겨봤다. 그런 자국이 온 몸에 몇 곳이나 있다. 윗몸뿐 아니라 다리에도 엉덩이에도 있다. 깜짝 놀랐다. “왜 이래?” “할머니가..” 한다. 세 살이라 해도 겨우 첫 돌이 지나 이제 말이 늘어가는 시간이었다. 아들을 살짝 불렀다. “할머니가 목욕시킬 때 자꾸 울고 말 안 듣는다고, 수건으로..”
어머니는 손 힘이 굉장히 세다. 일제 강점기 때 부역으로 공장에서 일하실 때 실수로 가운데 두 손가락이 잘리셨다. 그것이 다져지고 다져져서 오른쪽 뭉툭한 손으로 솥이나 냄비를 닦으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다. 그 힘으로 화가 치밀어서 힘을 주고 타월을 휘둘렀을 테니 연한 피부에 얼마나 아팠을까.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그렇다고 그 순간 어머니가 밉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은 많지, 끝이 없지, 아이는 사고를 쳤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셨나 보다. 그 당시에는 작은 시누도 이웃에 살았는데 시누도 일을 하러 다녀서 외손주 둘도 어머니가 매일 들러서, 때로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봐 주셨다. 얼마나 힘에 벅찬 나날 들이었겠는가?
연고를 찾았다 다행히 쓰고 남은 연고가 있었다. 살살 문질러 주었다. 거친 내의 대신 하얀 면 커다란 어른 티를 입혔다. 아이는 아프다고 칭칭 대면서도 엄마의 손길에 위로가 되었는지 잠이 들었다. 회사 직원들과 회식이 있다고 한 잔 걸치고 온, 정직하고 성실한 남편은 딸의 잠든 예쁜 모습에 뽀뽀를 살짝 하고는 힘든 가장의 역할을 다한듯 바로 잠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참 벅찬 날이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에는 안도감으로 찼다. 오늘 하루 아차 하면 큰 일 날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해야 하는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 방문을 살며시 열어봤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피곤에 지친 몸으로 코를 골고 계신다. 다행이다. 내일 또 하루가 시작되리라. 나는 내일 또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살림을 맡기고 나갈 것이고 내일도 어머니의 하루로 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작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받아오는 직장에 여느날 처럼 나갈것이며, 내 다리와 딸의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면 원상으로 회복될 것이다. 거기다 오늘 나는 30권짜리 대백과 사전을 팔았다. 내일 회사에 가면 많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받을것이며 호명되어 박수도 받을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은 그래도 운수 좋은 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