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십 살 김순남 Jun 11. 2022

오빠는 미남이었다


라일락 향기가 달콤하다. 어쩌면 이리도 좋은가? 티끝 하나 보이지 않는 보도블록을 타박타박 걷는다. 조용한 골목길 하얀 집 앞,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두 노인네가 담장 옆에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바둑을 두고 있다. 문득 신선놀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다가 순간, 아 ~ 느낌이 왔다. 오빠다.!!! 걸음을 빨리했다. 맞다!!      


“오빠 !!!”      


오빠가 나를 빤히 본다. 그 눈빛이 너무 낯설어서 순간 멈칫했다. 

    

"오빠 나,  복남이.!!”      


오빠가 날 못 알아보는 듯해서 놀라움에 큰 소리로 외치며 가깝게 다가갔다. 눈앞에 바싹 다가갔을 때야 비로소 알겠다는 듯, 깜짝 놀라며 여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복남이네!! 니가 여를 다 오고, 어쩐 일고.”     

"이 동네에 오는 기차가 있길래 탔다 아이가“      

오빠는 바둑을 두던 노인에게 나를 소개한다.     

”내가 말하던 동생.”     

“아, 그 동생, 자주 말 하더마는 빨리 만나게 되네”     


하며 나를 알겠다는 듯, 눈웃음을 주신다.     


“오빠, 내 말 많이 했나 베. ~ ”      

“많이 했지.”      

“오빠, 얼굴이 너무 좋다. 술하고 담배 끊었구나!”      

“이 동네 오기 전에 끊었지. 그거 안 끊으면 이 동네 못 들어 와 산다.”     

“그렇구나. 오빠 얼굴이 너무 깨끗해 졌다. 주름도 많이 없어지고. 오빠는 이곳에서 사는 게 좋구나.”     

“좋지,"     


오빠는 정말 좋아 보였다. 젊을 때 모습이 보인다. 오빠는 미남이었다. TV드라마에서 지진희가 나오면 항상 오빠를 생각했다. 오빠 젊을 때 모습과 너무 닮았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오빠는 중학교 때부터 이상하게 집을 잘 나갔다. 우리 집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시면서 인자했고 엄마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오빠는 아무래도 사주팔자에 방랑벽이 있었던 것 같다. 동네 깡패들과 어울려서 싸움질도 잘했다. 무리를 끌고 다니면서 대장 역할도 했다. 집을 나가서 며칠씩 소식이 끊길 때마다 엄마는 막내인 날 데리고 오빠를 찾아 나섰다. 그것이 대학 들어갈 때까지였다. 그때는 돈만 있으면 대학을 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엄마는 보따리에 돈다발을 싸서 누군가에게 갔다.      


그렇게 해서 변두리 이름 없는 대학까지 보내어도 오빠는 일 년을 못 채우고 나왔다. 그래도 오빠는 심성은 착한 사람이었다. 오래 집을 떠나있다가 돈 떨어지고 집 생각나면 들어오곤 했는데, 아버지가 무서워 선 듯 못 들어서고 항상 날 먼저 불러냈다. 그렇게 엄마에게 오빠가 돌아온 것을 알리게 했다.      


아버지, 엄마의 노력에도 오빠의 방랑벽은 끝내지 못했다. 그런 오빠를 가여이 여기며 좋아했던 올케언니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서도 집 밖으로 떠돌아다니는 방랑벽은 여전했다. 집을 떠나 훌훌 자유롭게 떠돌다가 돈이 떨어지거나 집 생각이 나면,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것이 몇 년이 되기도 하고, 몇 개월이 되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술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나를 찾아와 만나게 되면 때로는 우리 집에서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하룻밤 재워 보내기도 했다.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얼마 안 되는 용돈이라도 호주머니에 넣어 보냈다. 그렇게 방랑벽이 있던 오빠가, 남편이 손위 처남을 위해 알아본 일자리에서 다 늙어서야 겨우 정착했다. 만날 때마다 “오빠, 술 좀 적게 먹어요” 했다.      


오빠는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뒤늦게, 아주 뒤늦게 “내가, 인생을 참 잘못 살았제.” 했다. 지난 생각 하며 지금의 편안한 오빠를 보는데 핑, 눈가에 눈물이 돈다. 오빠가 여기서 참 편안하구나. 고맙다.      


“오빠, 나 아버지 보고 싶어서.. 아버지 소식 들었어요?”     

“아버지..”     

오빠는 누굴 이야기하는지 모르는 듯, 아련한 듯한 미소만 띤다. 갑자기 너무 서운해 지려 한다. 오빠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한다.      


“온 김에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찾아봐라.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을 끼다. 또 니는 알아도 그 사람들은 니를 기억 못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서운해 마라. 사람마다 제각각의 길이 있으니까, 다 제 갈 길 찾아가느라 그런 거니까.”     


오빠가 다정히 내 손을 잡는다.      


“복남아 이래 보이 참 좋네. 다음에는 어쩌면 내가 니를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남아있을 때 말해야겠제. 고맙다. 고마웠데이. 이 말을 니한테 하라고 내 기억이 그래도 조금 남아있었나 보다.”     

“오빠는 무슨 그런 말을. 내 또 올게. 기차가 하루에 한 편밖에 없다 해서 오래 못 잊겠네. 오빠 또 보자.”     


오빠와 헤어져 오면서 반갑고, 그러면서도 걱정이 슬며시 되었다. 오빠가 치매를 앓고 있나? 왜 자꾸 기억이 없어질 거라고 이야기 하는지.

작가의 이전글 목련꽃 그늘아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