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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Jun 12. 2022

모두 안녕하시더라고요

# 앙코빵


몇몇 작은 가게가 보인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길에 가게라니, 장사가 되기는 할까, 생각하며 몇 가게를 지나치는데,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이렇게 깨끗한 길에 쓸 것이 뭐가 있다고, 생각하며 빗자루를 들고 계신 할머니를 쳐다봤다.     

 

“어머나 ~ 어머니!!! 여기서 뭐하세요.!!”     


집을 떠난 지 수년이 되신 시어머니셨다. 반갑고 놀란 마음에 어머니를 꽉 붙잡았다. 그 기세에 깜짝 놀라신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한참을 멍 하시는 듯하더니 날 알아보셨다. 순간 어머니도 화들짝 놀라신 듯,    

  

“니가 벌써 여 우얀 일고?”      


놀라움과 반가운 기색을 얼굴에 띄우시며 묻는다.   

   

“세상에, 어머니 여기서 사시는군요? 가게는 언제 차렸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냥 좀 쉬시지, 여기 와서도 뭐하러..”      


놀란 마음에 말이 속싸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가만있으면 뭐하노 심심하기만 하지. 가게 하니까 사람도 만나고 좋지 니도  이래 보게 된다 아이가. 니는 어떻노? 편해 보이네.”      


그때서야 놀란 내 마음이 풀어지는 듯 와락 눈물이 난다.      


“어머니, 그때 그렇게 보내드리면  안되는거였는데.. 죄송해요, 미안해요.”     

미처 준비도 없이 폭우같은 눈물이 쏟아진다. 말이 울음으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만 엉엉거린다.      

"뭐가..  내가 올 때 왔는데 뭐.”     

"그래도 많이 서운하셨죠. 얼마나 서운하셨을지.. 미안합니다. 그렇게 보내드리고 마음이 아파서.. 후회되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갈수록..”    

 

말을 잊지 못하는 나를 어머니가 오히려 위로해 주신다.  

   

"뭐가.. 그만하면 됐지. 우리 오래 같이 살았다아이가. 그만큼 오래 같이 살면서 알만큼 다 안다 아이가.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 서로가 나쁜 마음으로 안 살았으니 그만큼 오래  살았지. 헤어질 때가 되니까 마음으로 정리하라고 그래 된 거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인연이 어데 사람이 정하는기가. 인연이든 사는 거든 세상사 다 제 몫이 있다아이가. 마 괜찮다. 그만했으면 됐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니 이 동네 와서 보고 갈 사람 많제. 시간 모자란다. 빨리 가 봐라. 이거 먹으면서 가라.”     


어머니는 앙코빵 두 개를 건네주신다. 나도 어머니도 좋아하는 빵이다. 그런데 어머니 손가락이!! 어머나! 다섯 손가락씩 열 손가락이 모두 온전하다. 놀래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어머니 손가락이 !!”      


손을 덥석 잡아서 들여다봤다. 내 행동에 어머니가 놀라신다.    

 

“와? 내 손가락이 뭐 어때서?”      


그 반응에 내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 아니예요. 아니예요.”     


어머니는 왼손 두 손가락이 없으셨다. 어릴 때 군수 공장에서 일하시다 기계에 잘렸다고 하셨다. 얼마나 끔찍했을가? 나는 어쩌다가 손가락만 베어도 싸잡고 병원으로 뛰어가는데.. 어머니는 얼굴이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작다. 처녀 때 사진 보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그 예쁜 얼굴에 그런 가혹한 일을 당하셨다.      


어머니에게 꽃피는 청춘 시절이 있기는 있었을까? 시집가서 처음 어머니 손을 봤을 때 놀랬다. 그래도 감히 묻지를 못했다. 40년을 함께 살면서 딱 한 번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에 어머니 손에 대해서는 입을 뗀 적이 없다.      


내가 어머니와 오래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손가락 때문인지도 몰랐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나오신 분, 내 윗세대 여인의 일생을 생각하고 나서부터였다. 사람은 지난 고통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니 어머님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으셨다.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 잊고 싶은 일이 더 많은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다. 나도 누가 나의 지난 시간을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러지 않는다. 기차 시간 맞춰서 가야 할 텐데, 빨리 서둘라며 어머니는 다시 재촉하신다.    

 

"어머니, 또 올께요. 다음에는 아이들 고모들도 같이 올께요. 어머니가 이렇게 잘 계시는 것 보면 너무 좋아할 거예요.”     

 

어머니는 그 말에는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 꼭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신다. 그토록 알뜰히 챙기던 딸들이었는데, 어머니의 반응에 내가 서운할 정도다. 


"어서 가라.”      

"녜. 아버지도 찾아뵙고 언니도 보고 가려고요”      


하며 발길을 재촉하는데, 등 뒤에서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느그 언니는 아마 니 못 알아 볼거로.”      

"왜요?”      

"가 보면 안다. 어서 가 봐라.”      


오빠도 언니가 나를 못 알아볼거라 했다. 살짝 불안했다. 언니에게 무슨일이 생긴걸가.. 그래도 어머님이 편안해 보여서 마음이 좋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긴 시간,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아픔이, 미안함이, 내 눈물 속에 희석되는 듯하다. 어머니의 '그만하면 됐다.'는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위로가 되는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그래야겠다.      


‘그만하면 됐다.’     


어머니의 손가락, 믿어 지지가 않아서 다시 뒤돌아봤다. 어머니 가게는 골목 귀퉁이 돌아서였나? 벌써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손가락이 말짱했다. 어머니는 놀라서 보는 내가 무색하리만치 온전한 자신의 손가락이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씀하셨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 좋은 곳에 자리 잡으시고 모든 게 치유가 가능하셨나 보다.   

  

그 사이 어머니 가게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와 계셨다. 이웃 할아버지가 뭔가를 사러 오셨나 보다. 두 분의 대화가 재미난 듯, 퍼져나오는 공기가 명랑하다. 갑자기 다시 코끝이 찡 해 온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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