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십 살 김순남 Jun 17. 2022

하늘마을 주민센터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실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도 몰랐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라일락 꽃향기에 비 향이 섞이어 그야말로 천상의 향이 콧속으로 들어 온다. 이대로 한없이 걸어도 좋겠다. 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진다. 출발할 때 날이 너무 좋아서 우산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어딘가에서 일회용 우산이라도 구해야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저만치서 누군가가 우산을 잔뜩 꽂은 우산꽂이를 문 앞에 내어놓고 들어간다. 반가워 뛰어갔다.      


건물 앞에 섰다. 입간판이 보인다. 하늘마을 주민센터다. 그러면 이 우산은 주민을 위한 것인가? 반가운 마음에 안을 기웃거렸다. 우산을 내어놓은 여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아!! 너!! 정숙이!! 맞지?"     

 

맞다. 정숙이다. 아주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바로 알아보겠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바로 알아볼 수 있을가? 언니와는 다르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스무살 때 만난 그 얼굴 그대로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오는 길에 오 일병님을 만났는데, 그도 예전 그대로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은 언니와 같지만, 언니와 다르게 두 사람 모두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며 반가움과 동시에 이상한 생각이 든다.     



정숙이와 나는 군 병원에서 만났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앞집에 사는 아줌마가 큰 종합병원에서 보조간호사를 모집하는데 일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더란다. 하겠다면 아는 사람을 통해서 합격하게 해 주겠다고 하더란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그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타이피스트를 꿈꾸었었다. 그 당시 타이피스트는 고급 직종이라, 나 같은 아이에게 쉽게 주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일을 해보자 싶어서 지원했다. 합격하게 해 주겠다는 앞집 아줌마의 말만 믿고 지원했지만,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때에도 간호학원 같은 게 있어서 보조간호사는 그곳에서 공부했던 것 같은데, 그런 것까지도 나는 모르는 상태였다. 암튼 나는 합격을 했고, 합격한 사람들은 따로 교육이 있었다, 혈압, 체온, 붕대 감는 법, 침상 정리 등, 환자 씻기는 것도 배웠다. 그 당시는 그 정도로 보조간호사의 일을 할 수 있었던 때였나 보다. 정숙이는 교육받는 첫날부터 내 옆에 앉은 친구였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넌 유난히 어려 보여, 몇 살이야?" 

“19살”      

“나 보다 두 살 어리네.”     


그래도 나는 언니라 부르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냥 친구가 되었다. 정숙이는 키가 크고 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좀 튀어나와서 나이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우리는 금새 단짝이 되었다. 며칠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가자며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다방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방에 들어섰을 때, 풍기는 커피 냄새가 그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다. 무엇이든 처음의 경험은 강렬하다. 살면서 정숙이는 까마득히 잊어도 그때 그 다방에서 풍겼던 커피 냄새는 종종 나를 알지 못할 그리움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난 다방 처음이야.”     

“그래? 그럼 신고식 해야겠네.”     

“할게. 커피값 내가 낼게.”     

“학원도 안 다닌 것 같던데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어? 누구 빽이야?”

“빽은 없고, 앞집 아줌마가 대학교 조교수인데 여기 병원장님하고 아나 봐. 아마 엄마가 부탁한 것 같애. 너도 빽으로 들어왔어?”     

“나는 학원에서 추천해 줬어.”     

“간호사 되려고 공부하고 있었구나.”     

“정식간호사야 대학을 나와야 하니까 넘볼 수 없지. 집에서 나 학원 보내느라고 애 많이 썼어. 봉급타면 모두 시골 보내 줘야 해.”      

“아.. 그렇구나.”     

“지금 삼촌 집에 얹혀 있어. 삼촌네도 식구가 많아서 같이 있을 형편은 아닌데, 내가 돈 벌 동안은 어쩔 수가 없었지. 이제 취직했으니 나와야지. 하숙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너무 비싸. 봉급을 타도 하숙비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정숙이는 내가 묻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정숙이 이야기를 했다.     


“딱하네. 보조간호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자기 용돈 하면 딱 될 정도인데. 우리 집도 괜찮으면 와서 있으라고 해라. 우리 먹는데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될텐데.”


그때는 오빠, 언니는 외지에 나가 있고 엄마와 나, 둘만 살고 있을 때여서 가능한 환경이었다. 내 말을 들은 정숙이는 너무 좋아했다. 당장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그리고는 그냥 있지는 못하니까 하숙비로 쌀을 주겠다고 했다. 쌀이 반말인지, 한 말인지 기억이 안 난다. 그녀가 들고 온, 쌀자루 기억은 난다.     


나보다 2살 많은 정숙이는 언니 같았다. 그때 겨울은 지금 같지 않아 실내에도 보온이 잘 안 될 때였다. 옷도 잘 챙겨주고 머플러도 자기 것을 내게 씌워주기도 하고 버스 손잡이가 너무 차거워 손을 시려할 때, 자기 장갑을 벗어서 나에게 끼워준 적도 있었다. 언젠가는 시골 자기네 집에 가서 자고 온 적도 있다. 나는 태어나 보니 도시였고, 시골은 가 본 적이 거의 없을 때라, 친구 집이 너무 좋았었다. 버스를 타고 시골길에 내려서도 논밭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서야 집이 있었다. 

     

하룻밤을 자는데 한 방에서 할머니, 어머니, 동생들, 정숙이, 나, 또 어떤 아주머니가 같이 잤던 기억도 난다. 아침에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나무뿐이 아니라 솔방울도 넣고 불을 피우는데, 솔방울 타는 냄새가 정말 좋았다. 더 놀랐던 것은 친구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능숙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다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잔 방 뒤편에 작은 방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정숙이 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워계셨다.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한다고 했다. 벌써 3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되고 나서부터 논을 많이 팔았단다. 정숙이 서울 학원 보내고, 먹고 자는 값으로 삼촌네에도 작은 감사 표시를 했는데, 그 돈이 모두 논 판 돈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서 내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쌀 안 가져 와도 돼.”     

“그거 얼마 된다고. 그 정도도 안 하면 내가 너무 미안해서 못 있지.”     


집으로 돌아올 때, 정숙이는 아버지 방문을 빼꼼히 열고서는 인사를 했다.     


“아버지, 저 가요, 또 올께요.”     


대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로 오면서 눈가를 슬쩍 훔치며 혼자 말을 했다.      


“내가 집에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숙이 집에 다녀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우리 옷을 빨 때, 정숙이 옷도 함께 빨아주었다. 정숙이는 그 보답이었는지 나에게 헌신하듯 잘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중에, 보조간호사 탈의실에서는 자잘한 도난 사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돈이, 지갑이, 무엇무엇이 없어졌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예사로 생각했다. 내 것은 없어지지 않았으니, 그런 일이 가끔 생기나보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도 난다. 그날도 누가 뭘 잃어버렸다고 했다. 퇴근길에 정숙이와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탈의실에서 자꾸 뭐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내 것은 한 번도 없어진 적 없어, 너도 없지? 

우리하고 친한 아이인가?"      


정숙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뒤에 가서는 내 돈도 일부 없어졌다. 지갑은 그대로 있고 돈만 조금 빼 갔다. 불쾌한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으로 궁시렁 거렸다.  

   

"가져가려면 지갑 채로 다 가져가던지 아니면 이런 행동을 말든지, 괜히 보조간호사들 수준 떨어진다는 말만 듣잖아“     


며칠 동안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그날은 아침에는 비가 안 왔고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병원은 삼 교대다. 정숙이는 아침에 나갔고, 나는 오후에 나가는 날이다. 나가려고 보니까 예쁜 우산이 있다. 못 보던 것이다. '정숙이가 새 우산 샀구나'     


내가 쓰고 가서, 정숙이가 퇴근할 때 쓰고 오면 되겠다. 우산을 쓰고 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정숙이 옷장에 메모를 붙여두고 그 앞에 우산을 세워놓고 놓고 나왔다. 다른 동료들도 볼 테니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병실로 가서 일하고 있는데, 동료 세 명이 와서는 날 불러낸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놀래서 따라 나갔다. 나를 둘러싸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묻는다.  

   

“탈의실에 있는 우산, 네가 쓰고 왔어?” “네거야?” “네가 정숙이에게 준거야?”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묻는다. 그때는 정숙이가 우리 집에서 지낸다는 것을 여러동료들이 알고 있었을 때다.     

"정숙이건데, 아침에 안 쓰고 갔기에 내가 쓰고 왔어. 왜? 우산이 바뀌었어?”     


순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숙이는 돈을 참 알뜰히 썼다. 그렇게 예쁜 우산을 덜컥 사지는 안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은 알았다 하고는 돌아갔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했다. 호들갑스러운 동료들의 행위가 못마땅했다.     


“우산이 바뀌었어? 나는 네가 산 건 줄 알고 들고 간 건데”     

“응.”     

“그랬구나, 세 사람이나 몰려와서 불러내길래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놀랬어. 바뀐 사람이 혼자 와서 물으면 되는 걸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지?”      


그때도 나는 정말 감을 못 잡았다. 그 당시 일을 참 재미있게 했었다. 보호자들에게도 상사에게도 칭찬을 많이 들었다. 뭣 모르고 들어 갔지만 열심히 일했다. 험하고 궂은일도 싫어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 얼굴, 발 등도 깨끗이 닦아주었고 손톱도 잘 챙겨가며 깎아 주었다. 일에 애정을 가졌던 기억이다. 한참 지나고 난 뒤, 어떤 동료가 나보고, 그때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투표가 있었는데 내가 일등이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정도로 일에 올인 했고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기에 그런 일에 내가 연루되었다고 생각조차 못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산 문제가 있고 난 뒤 얼마가 지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한 달 안팎이지 싶다. 그날도 정숙이는 아침에 나가고 나는 오후에 나갔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탈의실로 갔다. 앞서 있던 동료가 날 보자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에구, 너도 마음고생 끝났구나, 정숙이 조금 전에 나갔어.”     

“정숙이가? 어딜?”     

"그만 뒀다고, 짐 챙겨서 조금 전에 나가더라고.”     

“정숙이가? 왜? 아니야. 오늘 출근했어!!.”     

“어머, 너 진짜 몰랐구나.!!”   

  

그때야 동료로부터 그동안의 일을 듣게 되었다. 탈의실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의 범인이 정숙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물증을 못 잡아서 당하고 있었는데 누구누구가 기어이 밝혀 냈단다.조금 전에 간호 부장실에 불려가서 자백하고 반성문 썼는데, 며칠, 누구 거, 무엇을, 얼마나 훔쳤는지 쓰게 하고, 그동안 밝히느라고 애쓴 동료들에게도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무릎 꿇고 사죄하게 했단다. 그리고 이번 달 받을 봉급으로 그동안 피해 본 사람들에게 보상하기로 하고 짤려서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료가 덧붙히는 말은 더 기가 찼다. 

     

"처음엔 널 모두 의심했어. 아니면 둘이 공범이던지. 다른 사람들 것은 다 없어지는데 너만 없어졌다는 말도 없고, 그래서 사실 조금은 긴가민가하기는 했지. 그런데 넌 진짜 모르는 것 같더라고.“     


정말,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다음 말이었다     


"정숙이 반성문에, 네 거는 안 훔치려고 했는데, 네가 오해를 받는 것 같아서 네 것도 한 번 가져갔다더라.”     

어떻게 일을 끝냈는지도 모르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정숙이는 엄마에게 시골에 갈 일이 생겼다며 짐을 챙겨갔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오늘 일어난 상황을 이야기했다.    

  

“나는 집에 뭔 일이 생겼나 했지. 이틀 전에도 이번 달은 집에 안 가고 싶다며 쌀은 다음 달에 남동생하고 깉이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남동생 자랑도 하고 그랬는데, 퇴근할 시간이 아닌데 들어와서는 갑자기 집에 간다며 이것저것을 막 챙기길래 아버지에게 뭔 일이 생겼냐고 물었지."   

  

엄마와 나는 정숙이 이야기를 하면서 속이 너무 상했다. 그런 짓을 한 친구보다, 친구에게 한 그들의 짓에 더 화가 났다. 친구가 한 짓은 나쁘지만, 밝혀냈으면 주의를주고 조용히 내보내면 되지, 왜 많은 사람 앞에서 그토록 잔인하게 일일이 그 사건을 쓰게 하고, 창피와 모욕을 주고 내보내야 했는지.     


정숙이는 한 달에 한 번, 어쩌다 두 달에 한 번은 봉급을 가지고 집에 갔다. 갈 때는 동생들 옷을 사서 가기도 했다. 나와 함께 동대문 시장에 가서 발품을 팔고 동생 옷을 고르며 즐거워했었다.     

 

정숙이가 그렇게 병원을 그만두게 되자 동료들은 유난히 나에게 살갑게 대했다. 그들이 나를 오해했던 것도 미안했고. 그런 정숙이를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해 쥤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내가 새삼스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우산 때문에 날 찾아왔던 동료가 도난 사건 진범을 밝혀내는데 앞장선 동료였다. 나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내가 의심받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 동료는 나이가 많다. 그곳에서 일 한지 오래되고 성격이 딱 부러져서 많은 동료가 좋아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정숙이와 갑작스럽게 헤어졌다. 엄마와 나도 그렇지만 정숙이도 인사 한마디 없이 그렇게 도망치듯 간 것이 얼마나 마음에 남았을까. 병원에서는 그런 이해 못 할 행동을 했지만, 엄마와 나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편지로라도 서로에게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쯤 후 정숙이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을 받았다. 그때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고 하면 보통 한 달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편지 내용은 놀라웠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끝에 시골 내려와서 바로 결혼했단다. 자기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신혼이라 적응하는 중이라 했다. 편지 내용은 분위기상으로는 우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놀랬다. 겨우 20살이 넘었을 뿐인데 벌써 결혼이라니, 나는 꿈도 꿔 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숙이는 집에만 다녀오면, 자꾸 시집가라고 한다며, 그 소리 너무 듣기 싫다고 했었다. 그 말 듣기 싫어서 집에 가기 싫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기 싫었던 시집을 시골 내려가자마자 했다니, 그 사건이 얼마나 쇼크였으면 바로 결혼을 했을까 싶었다. 그래도 시집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다. 잘 되었다며 엄마도 좋게 생각했다.     


정숙이가 나가고 몇 달 후 나도 그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일찍 학교에 들어가서 그때서야 갓 스무살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 안 되는 봉급도 봉투째로 엄마에게 주고 차비를 타서 쓰는 아이였다. 정숙이는 내 친구 중에 제일 먼저 시집을 간 친구다. 그녀가 보고 싶기도 했고 친구의 신혼생활도 궁금했다. 결혼 선물도 주고 싶었다. 병원을 좋게 나갔으면 결혼식 때 나를 초대했을 텐데, 이런저런 마음으로 결혼 선물을 사서 정숙이를 찾아 가 봐야겠다 생각했다.     


가끔 정숙이 손에 이끌려 갔던 동대문 시장에 혼자 가서 예쁜 커피잔 세트를 샀다. 이제야 나는 어른이 된 듯했다. 정숙이와 함께 갔던 그 먼 시골길을, 커피 세트를 들고 신혼살이를 하고 있을 새색시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니, 동생이 날 데리고 다시 이웃에 있는 남자의 집으로 갔다.      


오래된 대문을 삐꺽 열었는데, 보이는 넓은 안마당에서, 긴 월남치마를 입고 있는 키 큰 친구, 친구라기보다 나보다 십 년은 더 나이 든, 어떤 아줌마가 거기 있었다. 내가 철이 없었다. 그냥 내 생각만 했다. 신혼이라 예쁜 새 각시를 생각했다. 깨가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신접살림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기대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나를 보며 정숙이는 순간 황당해하는 모습을 살짝 비췼지만 그래도 멀리서 온 나를 위해 차분히 밥을 하고, 나물을 새로 무치고, 생선을 구워 상을 차려주었다. 내가 사 들고 간 커피잔에 숭늉도 따라 마셨다.      


"시집 가니 좋아? "     

"그냥 그렇지 뭐."     

"아버지 병세는?'     

"여전해. 어머니에게 고마웠다고 전해 줘."     


우리가 나눈 말은 이 정도였다. 그 시간이 참 길었던 기억이다. 우리는 함께 지낸동안 정말 좋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만난 정숙이는 왜 그리 어색하던지.     


정숙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오늘로 정숙이와는 이별이다. 오늘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말해 준다. 내가 “또 보자. 서울 오면 집에 와.”라고 했을 때 정숙이는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숙이의 행동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돈을 모아서 시골에 보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엄마 말대로 보조간호사의 봉급은 얼마 안 된다. 정숙이는 항상 돈이 모자랐다. 생각해 보니 봉급은 통째로 시골에 보내고, 좋지 않은 행동으로 자신이 써야 할 돈을 충당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그렇게 몰랐을까. 내가 첫 범인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런 낌새를 못 느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서야 그런 사실을 알고서는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당사자인 나는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그녀들의 입에 한 동안 오르내렸으려니 생각하니 기가 찼다. 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전혀 내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는 화를 낼 대상조차도 없다.      


우리는 내 이웃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이웃의 몇 가지 습관과 행동으로 우리는 그들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오류다. 나는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난 후, 내가 왜 그랬지? 라고 생각할 때도 많다. 내가 아는 정숙이와 그들이 아는 정숙이는 다르다.      


사실, 정숙이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을 가지긴 했다. 그것은 그녀의 불행한 환경 탓이었을 거다.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몇 개월 남짓했지만, 나에게만은 그녀는 정말 따뜻하고 친절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마르고 광대뼈가 조금 튀어나온 그때의 정숙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녀가 나에게 해 준 따뜻한 행위들도 몇 가지 기억하고, 나눈 대화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어느 모임에서 만난다 해도, 나처럼 나이 먹은 그녀의 모습을 알아볼 자신은 없었다. 아니, 전혀 못 알아 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는 순간 정숙이를 알아보았다. 반가움이 목까지 차올라, 팔을 붙들고 “정숙이 맞지?”를 몇 번이나 했다. 그녀는 내 행위가 우스운지 그냥 미소만 띠운다. 그 미소도 정숙이의 미소를 떠올리게 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띤 웃음은 쓸쓸한 듯, 외로운 듯, 약간은 어두움을 띤 미소였다.      


“비를 맞으셨네요. 마음에 드는 우산을 쓰셔요. 쓰고 가시다가 비가 그치면 아무 곳에나 세워두고 가셔도 됩니다.”     

“비가 그치지 않으면 그냥 집에까지 갖고 가도 되나요?”

“그냥 가져가시긴 해도, 집에까지는 못 가지고 가실거예요. 이 마을에서는 어떤 것도 가지고 들어 올수도,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걸요.”     

“아, 맞네요. 마을에 들어올 때 관리실 아저씨에게 모든 것 다 맡겨야만 들어올 수 있었어요.”     


그녀는 친절하게도 많은 우산중에서 낯익은 듯한 우산을 건넨다. 아.. 이 우산, 가슴이 뾰족한 무언가에 찔린 듯 순간 아프다.  우산을 받아들고 그녀를 봤다. 그녀의 표정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아닌 듯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산을 받아들고 그냥 발길을 돌리기에는 이 순간이 너무 애틋하고 아쉽다. 나는 정숙이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나의 반가움에 전혀 반응이 없는 그녀에게 이제 반말은 나오지 않는다.     


“내 친구 순임이도, 우리 언니도, 젊어지고 예뻐졌더라고요.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데 아가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가씨는 내가 아는 정숙이 맞아요. 표정도 그때와 같아요. 한때 우리 집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어요. 직장도 같았답니다. 다른 동료들은 정숙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저는 정숙이가 참 좋았어요. 저에게는 너무 잘 해 주었거든요. 언니같이 든든했어요. 한 번씩 외로울 때는 정숙이 생각이 났어요.”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서야 그녀가 입을 연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죠. 이해받지 못해서 외롭고 사랑받지 못해서 외롭죠. 아니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데 도저히 사랑할 수 없어서도 외롭죠. 제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나요? 맞을 거예요. 저는 누구에게도 이 동네로 온다고 말하지 않고 왔거든요. 그들은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상처받았을 거예요. 그중 몇몇 사람은 아직도 나를 보내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변할 수 없는 거예요. 서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서로에게 잘 있어라, 잘 가라, 그동안 고마웠다, 그렇게 그들이 나를 보내줄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런데..”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 순간 아!! 커다란 돌멩이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아찔함으로 나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정숙이가 놀라며 나를 잡는다.      


“그랬어, 그랬구나, 왜? 언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모습 이대로라면.. 아.. 그렇게나 빨리..”     

”그냥 사는 게 힘들었어요. 저는 태어나서부터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아이로 부모님 품에서 보호받았던 기억이 없어요. 땅 한 뼘 없이 남의 땅을 붙이며 살던 아버지는, 동네에서 어린 나를 겁탈한 늙은 사내에게 보상으로 논을 받았어요. 아버지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자리를 잡게 되었죠. 나는 그 사내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몇 번이나 도망쳤지요. 그 바람에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지기까지 했어요. 집을 떠나 도망쳐도 내가 편하게 살 곳은 없었어요. 결국은 그 사내에게 시집을 가야만 했어요. 내 팔자려니 하고 체념하며 살려고 했는데....  그냥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간힘을 쓰며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어요. 끈을 놓을 때, 그 찰나의 자유로움을 아직도 기억해요. 그 순간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변하지 않는 나를, 내가 참을 수 있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고 다시는 그 동네로 갈 수 없다고 해도 좋아요. 미처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동생들과 나로 인해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갈 그들의 마음 안에 내가 있기에, 그들이 나를 보내주지 않는 한 나는 변할 수가 없어요. 언젠가 그들이 모두 나를 찾아와 만나게 되면, 글쎄, 그때쯤이면 변할지도 모르죠."     

“그렇군요. 그 말 이해되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 제가 알던 분을 만났는데 그분도 옛 모습 그대로였어요. 그럼 그분도.?”     

“아, 멋진 군인 말이시죠? 매일 여기를 지나가서 알아요. 그분도 저 동네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오게 되셨죠. 나와는 경우가 다르지요. 그분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예요.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떠나버렸으니,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를 쉽게 보낼 수 있겠어요.”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는 여기가 좋아요. 그 동네가 무섭거든요. 그 동네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있고 싶어요. 그러나 그 멋진 군인은 아닐거예요. 행복하게 살았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 거예요. 그럴려면 그를 놓아줘야 해요. 그를 더 이상 붙들지 말고.”     


나는 다시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 할머니, 그 사이에 비가 그쳤네요. 우산은 필요 없겠어요.”     

“정말 비가 그쳤네요.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어서 고마워요. 이 동네 와서 본 것들이 불가사의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친절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녜. 할머니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천천히 작별 인사 나누시고 편한 걸음으로 오세요. 그렇게 오시면 오시는 길이 무지개길 일 거예요. 오기 힘든 길인데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그녀의 지금의 시간을 축복하며 하늘마을 주민센터를 나왔다. 비가 뿌리고 간 보도블록은 더 깨끗해 졌다. 몇 발짝 걷다가 눈 앞에 펼쳐진 믿기지 못할 만큼 선명한 무지개를 본다. 와~아.. 소리만 나온다.무지개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 걷다가 문득 생각한다.      


과학, 인공지능, 칫 웃기지 마라! 이 대자연의 순환을!

작가의 이전글 소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