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십 살 김순남 Jun 18. 2022

처녑과 산채나물


정숙이와 헤어져 걷는다. 간판도 없는 작은 식당 문이 들어오라는 듯, 빼꼼 열려있다. 테이블 두어 개 놓여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갑자기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조용히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본다.      


메뉴는 딱 한 가지 <정식>만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인지 주문도 채 하지 않았는데 서빙하는 어여쁜 소녀가 조촐하게 한 상을 차려 놓는다. 동공이 커졌다.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나왔다. 흰밥, 재첩국, 소고기 장조림, 계란찜, 멸치볶음, 거기다 무 산채 무침. 놀라움에 고개를 들어 어린 아가씨를 본다. ‘아, 어디서 봤더라’ 문득 내 흑백 앨범 속 사진들을 머릿속에 소환시킨다. 아.. 알듯 모를 듯하다. 그러다 식당 주인인 듯 주방 저 안쪽에서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 중년의 아줌마를 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거신다.     


“혼자 왔수? 귀한 손님이 왔으니 귀한 음식도 드려야지.” 


하며 쟁반 하나를 소녀에게 준다. 아, 저 목소리.. 이모 목소리다. ‘이모’ 목소리가 안에서 잠긴다. 이모가 너무 젊다.  소녀가 내 앞에 쟁반을 놓는다. 소간과 처녑이다. 싱싱한 소간과 처녑을 소금에 참기름 듬뿍 섞어서 찍어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버지와 이모였다. 덩달아 어린 나도 좋아했던 음식이다.      


순간 고개를 들어 소녀를 본다. 예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날 보고 방긋 웃는다. 아. 그 웃음, 보조개, 엄마도 보조개가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어여쁜 소녀는 날 알아보는 듯, 모르는 듯, 무 산채 나물을 내 앞으로 밀어 놓는다. 새콤달콤한 맛, 내가 제일 좋아했던 무 산채 나물, 엄마는 여름 무는 맛이 없고, 겨울 무가 달다며, 한겨울에 산 무를 항아리에 넣고, 땅 밑에 묻었다가 여름에 꺼내서 쓰고는 했다. 산채 나물을 씹는 내 입안, 목구멍에서 꺼억 꺼억 소리가 올라온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버지는?” 물었다. 소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엄마의 자랑스러운 영감님을 이제는 잊은 거야? 아, 엄마, 이제 아픈데 없어? "   

  

혼잣말로 물으며 엄마의 전신을 눈으로 더듬는다. 엄마가 오래 병상에 누워있을 때, 철없던 이 딸은 짜증을 부리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던 엄마는 어린 딸의 철없는 행동이 얼마나 가엾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을까. 솟아오르는 옛 기억에 눈물이 두 뺨 위로 소낙비처럼 흘러내린다.     


엄마는 그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보상받고 있는 중일까. 새 연인을 기다리는 소녀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에, 백발이 된 내 머리와 검버섯이 핀 얼굴과 손등, 주름 투성이 얼굴을 들이밀고, 


“엄마!! 내가 이렇게 되었어!!”     


하며 오열했다. 어린 엄마는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내 앞에 계란찜을 내민다. 곱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 위에 잘게 다진 소고기 고명이 올려 있다.  아버지 오십에, 엄마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나은 막내딸, 엄마는 항상 아버지와 나를 겸상시켰다. 엄마와 오빠, 언니 밥상은 따로였다. 아버지 밥상에는 좀 더 특별한 것들이 있었다. 참기름을 듬뿍 칠해서 구운 김, 소고기 고명을 넣고 찐 계란찜, 먼 나라에서 온 통조림 속 생선 등.      

그리 애지중지 길러줬던 내 엄마, 아버지. 아버지는 엄마보다 십 년 먼저 집을 나서셨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이모는 엄마보다 십오 년을 더 있다 가셨다. 시집살이하느라 틈을 내지 못하고 겨우 시간을 내어,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이모를 찾아가면, 이모는 내 손을 잡고 장바닥으로 갔다. 싱싱한 소간을 파는 좌판에 앉아서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사주었다. 그때마다


"네가 왜 이리 피골이 상접했어, 니 에비 에미가 얼마나 애틋하게 키웠는데, 발이 땅에 닿을세라 그리 고이 길렀는데." 하며 눈물을 찍어내셨다.      


눈물을 삼키며 꾸역꾸역 모두 먹었다. 엄마가 맑은 물 한 대접을 내민다. 소녀 같은 엄마의 얼굴이 맑고 예쁘다. 아직도 언니가 준 천도복숭아를 손에 쥐고 있는 나에게, 


"복숭아 먹고 가세요.”한다.      

“돌아갈 때 기차에서 먹으려고요.”

“이 동네에서 돌아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어요. 지금 먹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는 그래도 날 챙기는구나, 앉아서 천도복숭아를 다 먹었다. 작별 인사하고 가려고 엄마가 다가오기를 한참을 기다려도 안 나온다. "잘 먹었습니다." 큰 소리로 말해도 기척이 없다. 엄마는 내가 가는데 안 나와 보고.. 갑자기 설움에 목이 멘다. 할 수 없이 식당을 나와 저만치 걷다가 뒤돌아봤다. 


아.. 어여쁜 소녀가 식당 문 앞에서 이쪽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달려가려 하자 소녀는 무심한 듯 문을 닫고 들어간다. 선 듯 걸음을 멈추었다. 소녀는 정확하게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녀의 세포 전체가 나에 대해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나를 보내는 것이 막연히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엄마다. 엄마는 어여쁜 소녀가 되어있었다. 엄마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은 이모다. 이모도 젊고 싱싱한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아.. 그들이 내 곁을 떠난 지가 오십 년은 되었다. 힘든 시대를 억세게, 자신의 일생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 내신 분들이다. 나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을 퍼부어주신 분들이다. 그랬는데.. 정말  그랬는데..  내가 “아버지는?” 하며 물었을 때, 엄마는 알 듯 모를 듯 막연해하던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오른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서로를 위해 맹목적으로 헌신하며 사랑했던 사람들과 연을 끊게 되는 것인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풀려 나도 모르게 땅바닥으로 주저앉아 한바탕 통곡을 해 댔다. 한차례 폭풍 같은 슬픔이 휘몰아치고 빠져나가니, 그때야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든다. 아무리 깊은 인연이었다 해도 사랑만 있었겠는가? 사랑했던 사람들 사이뿐 아니라, 미워했던 누군가에 대해서도, 수많은 상처와 미움의 기억들이 쌓여있었을 터이다. 잘 못 만난 인연도 있었을 터이다. 정숙이처럼 한 세상이, 아니 이십 년간의 세상이 백 년의 생만큼 길었던 사람도 있었을 터이다.      


이 동네는 그런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고요의 땅인지도 모르겠다. 정숙이 말대로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일생에 대한 보상으로, 상처받았던 모든 아픔을 치유받고, 새로운 몸과 영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순수했던 옛 시간으로 귀화하는 중인가 보다.  하늘나라 주민센터에서 정숙이가 말하지 않았는가, 나도 더 이상 그들을 내 맘속에 붙잡아두지 말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떠나보내야겠구나.      


인생의 답은 스스로에게 있나 보다. 나 스스로 그 생각에 이르자 찢어질 듯 아팠던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다. 맑은 마음으로, 그리움과 고마움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뒤돌아봤다.  내가 그사이 많이 걸어왔나 보다. 하얀 조가비 무늬의 보도블록만 보이고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골목이 아득히 뻗어있는 길을 보며 망연히 서 있다가 아이처럼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댔다. 크게 외쳤다.     


“정말 미안했어요. 용서하세요. 정말 고마웠어요. 평안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하늘마을 주민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