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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십 살 김순남 Oct 21. 2023

여행은 현재 진행 중

# 여행의 시작 


내가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컨대 내 무의식 속 어딘가에 세상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무의식 속에 의식은 언젠가 실행으로 옮겨지게 되어있었던 거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어떻게 그 좁은 통로 속으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암튼 나는 주름이 많은 좁은 통로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세상으로 나아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여행의 시작의 느낌이 그렇듯, 체크인이 시작될 무렵 내 몸은 긴장감으로 팽배해지고 설레었다. 게이트를 통과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꽤나 힘들었다.      


그렇게 지구로의 여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1950년 8월 15일, 새벽 2시였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좁은 게이트를 힘들게 통과해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 하고도 부산 어느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으로 눈도 뜨지 못한 채, 그냥 온몸으로 느껴지는 묘하고 낯선 공기, 낯선 냄새, 낯선 소음 속에서 겁에 질려 울기만 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나를 어떻게 해 주었으면 싶어서 더 크게 자지러질 듯 울어 제켰다.      


울음으로 심한 갈증을 느꼈을 때 단물이 내 입으로 들어왔고, 그 후 쭉 ~ 그 단물은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단물을 내 입에 넣어준 사람이 앞으로 나를 데리고 다닐 내 여행의 첫 번째 동반자라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여인에게 소속되었고 그 여인에 의해 내 지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 여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너무 다행인 것은 그 여인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또 그 여인옆에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미소 짓는 한 남자였다. 그도 속수무책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를 사랑했고, 나를 보호했다. 어떻게 보면 그 남자는 여인보다 나에게는 훨씬 큰 동행자였다. 알고 보니 나 이전에 그들에게는 나와 비슷한 또 다른 동행인이 있었다. 그들도 나를 잘 보호해 주고 데리고 다녔다. 그들 중에서 리더에게 내가 으뜸으로 사랑받고 보호받는 여행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이렇듯, 지구에의 여행을 쌈박하고 행복하게 무리 없이 수년을 해 나갔다. 두 사람은 내가 그들의 생명의 일부인양 조심스럽게 데리고 다녔다. 나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울면 먹을 것을 줬고, 입을 것을 줬고, 손만 벌리면 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줬다. 


그 동안 나와 한 그룹에 속해있는 동행자 말고도, 다른 그룹에 속해있는 동행자들과의 동행도  있었다. 그들과는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여행을 했다. 그들과의 동행은 또 다른 재미이며 축복이기도 했다. 내 여행이 4년 쯤 되었을 때였다. 다른 그룹에 속해있는 나와 같은 동행자를 만났다. 우리는 친해졌다. 유치원이라는 집단에도 함께 오고 갔다. 요즘말로 하면 절친이된거였다. 그아이는 철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철수를 이끌고 다니는 리더는 여자 혼자였다. 그 여자는 철수와 원숭이를 데리고 다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지구로의 여행을 시작한 철수는 나보다 더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다. 겁이 많아서 작은 것에도 놀라고 혼자서만 놀기도 했고, 때로는 오줌을 옷에다 뿌리기도 했다. 그런 아이였기에 그의 리더인 여자 동행인은 나에게 부탁했다. "우리 철수 잘 데리고 다녀 줘."


어떤 날이었다. 유치원 마당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놀았을 때다.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서 위를 쳐다보며 철수가 이어서 내려올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철수가 안 내려온다. "내려 와! 괜찮아! 무섭지 않아! 얼른 내려 와!" 하며 위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철수는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유심히 보니 한 손으로 고추가 있는 곳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순간, 철수가 뭘 하려는지 알겠다. 놀래서 소리쳤다. "빨리 옷 내려! 빨리 바지 내려!"소리를 질러댔다. 내 힘찬 응원의 목소리에 철수는 순간 바지를 훌렁 내렸다. 그러자 참았던 오줌이 철수의 고추에서 뿜어져 왔다. 제 딴에는 한참을 참았는지 뿜어져 나오는 오줌 줄기는 꽤 힘차게 내려 내 얼굴을 적셨다. 나는 기쁨에 팔짝팔짝 뛰었다. "됐어! 잘했어!" 하며 손뼉까지 쳤다. 해 냈다. 철수가 바지를 적시지 않고 무사히 오줌을 누었다. 철수의 리더가 나에게 매일같이 부탁했던 것을 나는 성실히 실행했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 누가 나에게 부탁했을 때, 내가 무사히 그 일을 완수했을 때의 뿌듯함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 느낌은 소중했다. 그 느낌은 앞으로 쭉 여행하는 동안 나의 행동에 책임감을 부여하고 성실히 여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되게하였다. 물론 그것을 깨달은 것은 여행이 한참이나 진행이 되고 난 후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알게 된 은밀한 비밀은 철수는 나에게 그를 부탁했던 여인의 몸을 통하지 않고, 다른 여인의 통로를 통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인이 대문을 열고 나가니 그 앞에 꾀죄죄한 보자기에 싸여 있더라는 것이다. 울지도 않고 입술이 파랗게 되어있어서 처음에는 죽은 아이인 줄 알고 겁이 나서 선 듯 안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아마 그 여인이 원숭이와 둘이서만 사는 것을 알고 있는 주변 누구의 짓일거라 짐작만 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두 알았지만 쉬쉬했다. 어느 날 철수의 리더는 철수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떠나기 전 나의 리더와 친했던 그녀에게 아무리 가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주더란다. 철수를 위해서는 그것이 좋은 것이라며.      


그 사실도 내가 10년이나 여행을 한 후, 어느 날이었다. 나의 리더가 우연히 한 동네 살던 여인을 만나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철수의 리더가 다른 사내를 만나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사내가 철수를 싫어해서 어딘가로 보냈다고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가슴은 찢어졌다. 그때 슬픔이 불쌍함이 무엇인지 나는 강하게 알았다. 그리고 남자란 동물이 여자란 동물에게 어떤 마약을 쓰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아무리 숨어 살아도 세상은 그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어떻든 나의 여행은 철수와는 다르게 여행의 시작은 순조로웠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몇 년이 더 흘러서였다. 나를 지극히 아끼고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니던 인생의 첫 번째 동행인, 아버지라 이름으로 불리웠던 그가 다쳤고, 많이 아팠고, 늙었고 그리고 지구를 떠났다. 그를 의지했던 우리의 동행인, 엄마라 이름불리웠던 그녀는 그때부터 남자의 부재가 우리의 앞으로의 여행에 얼마나 치명타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매사가 위태위태했다. 여인도 늙어갔다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도 바래졌다. 인생의 버팀목이 되었던 남자의 부재로 더욱 소심해 져 갔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어린 동행인을 위해서 강하게 버티었다.    

  

우리를 이끌어주던 강한 남자가 여행을 마치고 떠나자 남아있는 동행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 늙은 여인의 힘 부침을 알았던 거다. 그들은 다른 동행자를 찾아 떠났다. 그들은 늙은 여인과 나를 떠나 새로운 동행자를 만나 여행을 시작했고, 그들과 어울리느라 우리를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시점에서는 나이든 그녀와 나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린 나에게 헌신적이었고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도 더 이상 여행이 무리였을 때 나의 손을 놓았다. 그래도 그때는 나홀로 여행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자 리더가 여행을 끝마칠 무렵에는 내가 너무 어려서 그에게 해 줄 수는 있는게 전무였다.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나이가 들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아무것도 해 줄수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나마 그녀가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내가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그의 병자리를 성심껏 돌보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보내었음에도 마음 한켠에는 오래오래, 아니 지금도 미처 못다 한 내 마음이 죄스러워 자꾸 아파온다.      


첫 세상 여행의 시작일 때 만났던 동행자를 보내는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그러나, 인생의 동행자를 보내는 것은 어쩌면 일상 다반사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긴 여행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인생의 여행길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고 순리라 한다. 순리, 누가 거스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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