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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Mar 21. 2016

"엄마! 여기서 '즉시' 돈 준대요!"

8살의 눈에 비친 '누구나 돈 빌려드립니다.' 명함의 의미.

 글을 쓰고 있는데, 아직 퇴근도 전인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들뜨고 신나는 목소리다.

어? 이 목소리? 저번이랑 같은 목소리인데? 깔깔대는 웃음까지 같다.


여기서 저번이란?

https://brunch.co.kr/@milk/31



"다영아. 내가 이번에 또 정~말 귀여운 이야기 하나 더 들었는데, 집에 가서 바로 이야기해줄게!"

"귀여운 이야기? 그게 뭔데요?"

"아, 그냥 지금 이야기해줄까? 그때 만두 500개 기억나지? 그 애 이야기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3주 정도 된 8살,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

그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쓰레기를 엄청나게 주워왔단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어디서 이렇게 쓰레기를 많이 주워왔냐고, 못살겠다며 봤더니 다름아닌 명함이었단다. "아니, 명함을 왜 이렇게 많이 주워왔어?" 하면서 명함을 봤더니 글쎄, 그 명함에 적힌 내용이 다름 아닌


'지금 즉시! 누구나! 돈 바로 빌려드립니다.'


 그 명함을 엄마한테 주면서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엄마 매일 돈 없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지금 즉시 바로 돈 준대요.
여기에 전화해봐요! 누구나 준대요!
여기서는 돈 바로 주니까 돈 받으면
장난감도 살 수 있고 다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즉시 돈 바로 준다는 말에, 그 많은 명함을 다 주워왔단다.

세상에. 아 정말. 웃느라 도저히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어서 감탄사만 나왔다.

"아! 어떡해. 아 진짜 너무 귀엽다. 너무 웃겨요."

한참을 같이 웃다가,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그래도 그 애가, 집에 오면서 엄마가 좋아하고 엄마한테 칭찬받을 생각에

얼마나 들떠서 왔겠니?"라고 하시는 거다.


 맞다. 아이는, 항상 돈걱정을 하시는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여기서는 바로 돈 빌려준다니까 엄마가 이제 돈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야!

엄마도 좋아하시고! 나도 엄마한테 칭찬받겠지! 엄마가 장난감도 사주실 거야!'

얼마나 들떴을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었을까?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아이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8살의 눈에 비친 '누구나 돈 빌려드립니다.'는

정말, 그냥 누구에게나 그냥 바로바로 돈 빌려주는 곳이었을 테니까.

어른들의 눈에 비친 '누구나 돈 빌려드립니다.'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겠지.


 8살 아이의 눈에 비친 명함은 '엄마를 돈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고 나를 칭찬받게 해줄 마법의 도구' 였겠지만,

엄마의 눈에 비친 명함은 그저 처치하기 곤란한 쓰레기였듯이.

 그런데, 귀여워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내가 만약 아이의 어머니였다면 정말 행복했을 듯하다.

이렇게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을까?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데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고, 내 눈앞에 지금 존재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생각의

소유자라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했을 것 같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 바로 돈 빌려드리지' 않아도 행복했을 것 같다. 충분히, 넘치게.


 엄마와 함께 얼마나 웃었는지.

이렇게 흐뭇한 이야기를 들어서도 행복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딸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 하는 엄마가 있고,

지금 이렇게 엄마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행복하다.  

행복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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