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an 27. 2019

초읍 냄새 3

성지곡 수원지

 그 숱하게 갔던 어린이대공원소풍 (고유명사니까 붙여 쓴다)를 앞둔 5학년 소풍 전날. 선생님은 이번 소풍 때에는 삼림욕을 할 거라고 하셨다. 피곤을 모르던 나이이기도 했지만 삼림욕이라는 말은 참 생소했다. 나무에서 피톤치드라는 것이 나와서 몸을 좋게 한다 말인 것 같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피톤치드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정 같은 이미지로 상상을 했다. 삼림욕장이라는 말도 해수욕장처럼 어린아이들에게 기대감을 주었고.


다음날 어린이 대공원에서 놀이동산과 삼림욕장 두 갈래 길에서 우리는 삼림욕장으로 갔다. 생각해보면 백양산 소풍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자 그냥 고학년이 되어 조금 더 멀리 가는 것이었다. 다리는 아팠지만 삼림욕장에 대한 기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큰 나무들이 많은 곳에 가더니 선생님은 아- 를 연발하시며 좋지 않냐며 숨 많이 쉬라고 하셨다.


그 피톤치드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만져보았지만 알 수 없이 그냥 산 냄새만 났다. 평소 보던 나무와는 조금 다른 나무들이 더 많이 빽빽하게 있던 차이는 느꼈다. 나무에 손바닥을 문질러서 맡았을 때에는 그저 젖은 톱밥 나무 연필심 냄새가 났던 것 같다. 이게 뭐람... 그때는 그 냄새 귀한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밤이 되면 내가 사는 당감동에는 산 냄새가 차갑게 가라앉아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그걸 누군가는 수련회 냄새라고도 했다.


그 뒤로 피톤치드는 신소재처럼 순식간에 두루마리 휴지, 방향제, 목침 등에서 생활 속에서 (효능 진위 여부를 떠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20대가 되어 다시 찾은 성지곡 삼림욕장 은 비 그친 여름날이었다. 자발적으로 산으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쾌적하고 평탄하지만 그래도 처음이었다. 그 날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 나무 냄새, 풀냄새는 자발적 운동의 보상인 마냥 더없이 상쾌했다. 찾아보니 그런 날이 일 년 중 가장 삼림욕 하기 좋은 날이라고 한다. 그렇게 비 그친 후 산을 걸으면 산이 샤워하고 나온 직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뒤로 비가 내린 직후 특히 여름의 시원한 비가 그치고 나면 산으로 가서 풀냄새 흙냄새를 맡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장마철 산에 갔다가 안개까지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다. 산의 열을 식히며 나는 수증기처럼 안개는 요동쳤고 얇은 여름옷을 축축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면 나 역시 샤워를 마친 후처럼 촉촉하고 개운해져서 나왔다.


나이가 들면 목욕탕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나는  산림욕이라는 말만 들어도 산림탕에 들어가는 상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나이가 들면 전국 유명 온천에 찾아다니듯 명산의 삼림욕을 하는 경험을 모으고 싶다. 조금씩 다를  시간과 계절을 냄새로 외우며 말이다. 어쩌면 어른이 되면 맡을 일이 없는 젖은 톱밥 냄새나 나무 연필심 냄새 같은 것이 추억으로 남아 계속 발길을 요청하는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읍 냄새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