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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01. 2019

가장 정 있는 사람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의 날

명절

3시부터 사무실은 불 꺼지기 시작했다. 5시 우체국 창구엔 남자 직원들만 있는 것이 낯설다. 집에 가는 길 도로는 텅텅 비었다. 이 풍경이 익숙하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풍경보다 점점 빠져나가고 결국 평소보다 더 조용한 밤을 맞이하는 명절이 익숙하다. 그래서 명절마다 일을 안고 있는 건지 그러느라 일이 끊이지 않는 건지.
달력에 가장 보통의 날이 언제 일지 모를 정도로 무슨무슨 날들이 많다. 내 생일도 나를 위한 날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가진 정체성이 드러나는 날들이 있다. 평소에 걸치고 꾸민 것을 벗게 되는 때다. 내 아무리 리버럴하고 래디컬 한 사람이라도 며느리라는 케이지에 제 발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고 왁자지껄한 무리에서 팔짱을 놓고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그렇다. 어떻든지 가장 정 있는 사람, 또는 가장 한있는 사람은 평소를 감출 수 없다. 명절이면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만날 수밖에 없는 친척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젠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명절이면 제사를 마친 친구들과 지리하게 방구석에서 누워 있는 내가 만나서 피자를 먹기도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많이 했다. 핏줄이면서도 낯설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타자성에 진절머리를 내며 우리들의 이타성을 공고히 하는 시간들이었다. 즐거웠다. 지금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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