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무장해제시키는 초여름을 사랑했다
주말 저녁 한적한 동네에 고깃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기대하지 않았던 여름 냄새 폭탄에 사뭇 당황스럽다. 고기 굽는 냄새에서 부정할 수 없는 여름 냄새가 난다. 갑자기 찾아온 초여름이 반갑기는 한데 말이다.
매 시즌 돌아오는 가장 쿨한 유행 아이템은 계절이라고 믿고 있다. 계절을 맞춰 입지 않으면 어쨌든 촌스럽다거나 계절을 앞서 가면 (체온과 기온과는 별개로) 멋을 더하는 느낌이었다. 빠른 계절 옷은 흔한 아이템 중 부심 생기는 브랜드였고 누구나 뒤돌아보게 만드는 향수였다. 예컨대 8월 말에 걸치는 니트, 2월에 입지 않는 털코트, 4월에 입는 반팔이 그랬다.
유행에 둔해지면서 계절감각도 둔해졌다. 예전 같지 않은 계절 날씨 탓도 있지만 춥고 더운 것이 점점 더 싫어졌다. 봄이 오면 여름을 걱정하고 가을이 어면 겨울을 걱정하는 수전노가 되었다. 비실용 주의자의 낭만은 실용주의자가 되면서 청춘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사랑스러운 계절 초여름이 5월에 다녀가도 나는 멋없이 긴소매로 팔을 덮은 채 그 간지러운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반나절이 끝이라도 그 시간을 위한 옷차림은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오늘은 못했다라고만 생각했다. 그해에 느끼지 못한 짧은 설렘은 점점 줄어갔다. 차가운 밤이 되어도 남아있는 초여름 공기를 마시며 매년 돌아올 줄 알았던 지난날들이 추억이 된 것을 씁쓸하게 깨달았다. 추억이 줄어들면서 맡을 수 있는 계절냄새가 점점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