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간 김에 개성 넘치는 유치원들을 차례로 방문해 봤어요.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유치원, 직장 어린이집(하바), 교회에서 운영한다는 평범한 동네 보육기관을 가보고, 그곳의 선생님들, 아이들과 대화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어요. 독일은 프뢰벨, 발도르프 등 세계적인 교육가들을 배출한 나라에요. 킨더가든이라는 유치원이 독일에서 처음 생겼을 만큼, 유아교육의 역사가 깊죠. 시행착오도 무수히 겪어온 그들의 '현재'는 어떨지, 궁금했어요.
독일에는 뒤떨어지는 아이를 그냥 두지 않고, 함께 간다는 교육철학이 있어요.
장성한 두 자녀를 둔 독일 장난감 직원이, 자녀의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뿌듯하게 말했어요. 그 때문일까요. 독일 유치원에서 만난 어린이들과 선생님의 밝은 표정에서 행복함이 느껴졌어요. 처음 만난 독일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면서 돌발 질문들을 했죠. 메고 있는 가방 브랜드가 진짜인지, 폭염의 날씨에 긴팔을 입고 있는 이유가 뭔지 등등. 좋아하는 과목이 뭔지 물었더니 의외로 '산수와 독일어'라는 첫 대답이 나왔어요. 이어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답변은 제각각이었지만요.
제가 방문한 세 곳 모두 커다란 모래놀이장을 포함한 야외 놀이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특히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예체능 영역은 어떻게 배우고 있을지 궁금했어요. 제가 디자이너라 그런지 아이들의 아트웍들이 눈에 자꾸 들어왔어요. 실내에는 진짜 악기들이 있는 음악실, 널찍한 실내 체육관, 다양한 재료로 가득한 미술실이 따로 있는 점이 한국과 조금 다른 부분이었죠. 디자인도 화려하거나 모던하기 보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수수한 디자인이었죠. 읽는 책이며 교구, 환경은 한국 유치원이랑 많이 닮아 있었어요.
독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유치원에서, 마침 연령 통합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원장님께 이런 수업의 장단점을 물어보았어요. 원장님은 큰 언니들이 작은 아이를 도와 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동생들이 언니오빠에게서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큰 연령대도 배울점이 많다고 대답해 주셨죠. 밀키처럼 '외동'이 많아지는 요즘, 다른 연령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밀키는 1년간 연령 통합 교육을 받았는데, 윗 연령대들에게서는 조금 빠른 발달과정을 미리 접하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니!(충격)' 등등) , 아래 연령대들과 지낼 때는 인내심과 자제력 ('동생이니 참아야지 부들부들..'등등)을 배우는 것 같았답니다.
교회 부속 유치원은 After school이라는 초등학생용 방과 후 수업이 있었어요. 숙제를 한시간안에 마치고 나머지 시간에는 원하는 활동을 골라서 하도록 되어 있더군요. 팀을 이뤄 과학 실험도 해보고, 미술도 해보면서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려는 아이들의 긴 줄이 인상적이었죠.
밀키는 종종 짜여진 수업과 특별활동에 거부감을 드러내곤 해요. 알고 싶은 것을 찾아 공부하는 유튜브 세대의 아이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 아닌가해요. 집에서만큼은 밀키에게 선택의 전권을 넘겨주고 놀이든 배움이든 스스로 골라 함께 하곤 해요.
어릴적부터 수업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스스로 학습에 동기부여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제가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했던 아트 수업도 비슷한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이 수업을 고르는 형태였는데 그만큼 아이들의 참여도와 책임감이 높았죠. 물론 이렇게 자유도 높은 수업 이후, 독일도 정규 과정부터는 성적에 따라 다닐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고, 진로를 일찍 선택해요. 독일 학생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니, 완벽한 교육정책은 없는것 같기도 해요.
독일의 육아는 무덤덤하기로 유명해요. 독일에선 아이가 감기정도의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처방받지 않고 감기차를 먹거나 감기 사탕을 먹는 것처럼요. 유치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세계에 적극 관여하지 않고 조금 한발 떨어져서 지도하는 느낌이었어요. 예를 들면 교회 부속 유치원 4층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는데, 창살같은 안전장치 하나 없이 활짝 열려 있었죠. 이에 대해 묻자, ‘지금까지 사고난 적이 없어서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어린 아이들이 낑낑거리며 경사진 계단을 올라도 아무도 야단스럽게 보호하지 않았죠.
낮 2시쯤, 아빠, 엄마들이 아이들을 하원시키러 오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일찍??) 독일의 법적 육아휴직은 3년이라고 해요. 마침 육아휴직을 막 끝내고, 하바 직장 유치원에 둘째 아이를 보내고 있는 여직원과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복직 적응 중이긴 하지만 다시 일하게 된 것이 기쁘다는 그녀는 대화하는 내내 아들이 뜰에서 노는 것을 거의 보지 않았죠. 세살배기 아들은 삽을 들고 유치원 내 정원을 쏘다니며 바쁘게 놀이를 했고 간간히 엄마를 찾기는 했지만 엄마없이 노는 것이 꽤나 익숙해 보였어요.
하바의 직장 어린이집은 창업주가 살던 자택을 바꾼 곳이라 연식이 꽤 된 곳이었지만 그만큼 푸근한 느낌도 들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고 텅빈 유치원 뜰. 체리가 주렁주렁 열린 체리 나무에서 시식을 좀 하고, 해먹에서 하늘을 보고, 너른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며,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상상해 봤어요. 독일 교육학자 프뢰벨이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지은 킨더가든이란 말이 딱 떠올랐어요.
한국의 육아 환경에 대해 그동안 여러 편의 그림에세이를 그려왔고, 한국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환경을 마련해 주기까지 많은 과제가 남아있어요. 그러나 독일의 교육 또한 급격하게 바뀌기보다, 기업과 사회, 부모와 선생님 등 다양한 계층의 노력이 모여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었어요. 한국의 어린이들이 가정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환경도 스트레스는 적게, 행복한 마음은 많이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