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키베이비 Oct 18. 2019

밀키베이비, 열흘간의 놀이 같은 독일 탐험을 마치고

마지막회


놀이에 대한 열쇠를 찾으러, 독일에 가다


저는 밀키를 키우면서도 1~2년에 한 번씩 해외의 문화와 예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꼭 만들어요. 저는 이것을 '엄마 성장 여행'이라고 정했습니다. 이 엄마 성장 여행은 삶에, 그리고 제 그림 작업을 하는데 큰 영감을 줍니다. 20대에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 덕분에 육아를 하면서도 이 활동을 쭉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고요.


이번 독일 탐방은 '엄마 성장 여행'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독일에 가기 직전까지 아트와 놀이에 대한 제 책을 쓰던 중이어서 놀이와 교육에 대한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다녀올 수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하던 때였죠.


유럽의 놀이와 교육과정은 늘 궁금한 주제였어요.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어떤 커리큘럼과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이 배우고, 노는지를 포함해서요. 밀키베이비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과 아트 클래스를 하며 리서치도 필요하던 차에, 개인적으로는 가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기회가 열리다니! 100년의 시간을 다져온 다섯 곳의 독일 장난감 브랜드 본사 탐방,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아 교육의 역사를 가진 유치원들과 뉘른베르크 장난감 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출장 같은 여행이 바로 그것이었죠.



자동차 장난감 맛집, 시쿠와 브루더 100년 비법 ©김우영
동물 피겨 장난감, 독일에서 채색 도전! ©김우영
동물 피겨 장난감, 독일에서 채색 도전! ©김우영


어떻게 만드는가


독일에서 제가 보고 배운 것은 장난감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인 저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이들은 어린이라는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런 과정이 부재한 제품들이 만연해 있죠. 그런데 독일에서 만난 maker들에게는 어린이와 놀이에 대한 연구가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한 가지 장난감으로도 다양하게 놀 수 있다는 전제로 확장성을 고려하고, 그렇다고 상상력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그 '기본' 어떻게 제공해 줄지를 고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뢰벨 기념관에서 배운 진짜 가베 이야기 ©김우영
하바 본사에서 보드게임 특훈을 받아보았다 ©김우영
모래놀이 삽으로 탁구치다, 독일에서 배운 역대급 창의력 ©김우영
모래놀이 삽으로 탁구치다, 독일에서 배운 역대급 창의력 ©김우영


예를 들면 클래식한 장난감들은 아이들에게 특정한 형식으로 놀이를 유도하지 않았습니다. 열린 놀이 방식을 취하고, 원목이나 재질의 느낌을 아이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게 제작하는 과정을 직접 살펴봤죠. 동물의 털의 세세한 모양, 자동차의 조작 방식 등 기본적인 생활 지식을 얻을 수도 있게 해놨어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심미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가 있었고, 어린 사용자 경험과 의견도 소홀히 하지 않고 다년간 충실히 반영해서 제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소한 물건이나마 쓸 사람의 사용성을 생각해서 만든 것을 골랐으면 합니다. 커서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공장에서 아무 생각없이 찍어낸 것이 아니라 철학을 가지고 빚어내길 바랍니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든 무엇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빛내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동차 장난감 맛집, 시쿠와 브루더 100년 비법 ©김우영
자동차 장난감 맛집, 시쿠와 브루더 100년 비법 ©김우영


놀이판을 깔아주기


한국은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지만 놀이에 대한 관심은 반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독일에는 '어린이들의 놀이 일상을 지켜주려는 노력'을 특히 눈여겨 보았어요.


주택가에 위치한 교회 부속 유치원에 들렸을 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와글와글 노는 모습을 보았어요. 혹여 시끄럽다는 동네 민원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알아보니, 독일은 어린이의 소음은 '괜찮다'라는 사회적 동의, 법과 정책이 마련되어 있었어요.1)


유치원과 놀이터가 주택가에 지어질 때, 별도의 허가도 필요하지 않도록 법을 고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랫소리, 웃음소리가 있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합의를 얻어냈죠. 밀키가 조금만 뛰어도 '뛰지 말라'라고 제재하며 층간 소음을 걱정해야 하는 저로서는 놀라운 사실이었어요.


독일 유치원, 이런게 다르더라! ©김우영
독일 유치원, 이런게 다르더라! ©김우영
독일 유치원, 이런게 다르더라! ©김우영



또 하나는 이 유치원의 애프터 스쿨에서 한 시간 만에 숙제를 끝내고 각자 원하는 것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어요. 집에 가서는 숙제의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고, 빈둥거릴 수 있는 '어린이다운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죠.


베를린의  Oberländer’s라는 학교는 성적도, 시간표도 없이 필수 / 선택 과목을 두고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하게 해요.2) 이 학교에는 '도전'이란 과목이 있는데, 13-15세의 학생들에게 150유로(약 20만 원)을 주고 계획을 짜서 모험을 떠나는 것이 미션이에요. 자기주도적인 삶은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척 실용적인 과목이 아닌가 해요.


이 외에도 숙제가 하나도 없는 학교, 3개월간 장난감 없이 놀아보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어린이집 등등 독일은 교육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었어요.





놀이의 본질을 생각하다


약 10년 뒤인 2030년까지,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미래학자의 이야기3)처럼,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스스로 업을 만들어 갈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해요. 그러려면, 당장의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기 보다 기본적인 놀이를 통한, 생각의 확장이 우선되어야 하죠. 


현지 maker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이런 놀이에 대한 신념을 더욱 단단히 할 수 있었어요. 저도 아이를 기르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배울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프로젝트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죠.


귀국 후 그림작가로서의 노하우를 담아 아이들을 위한 아트 놀이 책 <오늘 또 뭐 하지?>, 아이가 부모와 함께 드로잉을 즐길 수 있는 <우리 엄마 그림이 제일 좋아> 책을 펴내고, 2020년에는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열고 있어요.


좋은 기회로 얻은 인사이트와 경험을,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 장난감 회사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 ©김우영



참고자료
1) Kids are alright, says German noise law by Guardian
2) No grades, no timetable: Berlin school turns teaching upside down by Guardian
3) Thomas Frey - 2 Billion Jobs to Disappear by 2030!




그림작가 김우영


밀키베이비라는 필명으로, 가족의 따뜻함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카카오 UX 디자이너이자 밀키의 엄마. <우리 엄마 그림이 제일 좋아>,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만> 을 출간하고, 전시와 아트워크숍을 종종 연다. 놀러오세요! 인스타그램 19K @milkybaby4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