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불안의 가면, "괜찮아"

by 은하


"큰 병원에서 추가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온 직후부터, 내 손에는 남편의 손 대신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검색창에는 낯설고 무서운 단어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경동맥 협착', '혈류 이상', '뇌경색 초기 증상'.. 불안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일단 예약부터 해야 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옆에 있는 남편은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어디든 좋으니까 당신이 정해줘." 남편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어디든 좋다니.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감기 같은 게 아닌데. 나는 최고의 의료진을,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종합병원, 대학병원, 뇌혈관 전문 병원들.. 이름 있는 곳들을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빠른 진료', '명의 추천', '당일 접수' 같은 키워드를 넣어가며 필사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콜센터와 홈페이지를 수십 번 들락날락했고, 대기 예약 후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도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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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열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묘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일상은 예전 그대로 굴러가는데, 오직 나만 멈춰 서서 병원 스케줄과 씨름했다. 혼자 시간을 쪼개 병원 정보를 알아보고, 남편의 증상과 과거 병력을 메모하고, 어려운 의료 용어를 이해하려 애쓰는 밤들. 정작 환자는 남편인데, 거대한 의료 시스템 앞에 서 있는 건 보호자인 나 혼자였다. 모든 결정이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내가 흔들리면 진료도, 치료도 늦어질 수 있다는 압박감이 목을 조여왔다.



대학병원 첫 진료가 잡힌 날, 나는 긴장한 남편보다 더 일찍 눈을 떴다.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입버릇처럼 '괜찮을 거야'를 중얼거렸다. 그건 남편에게 하는 말이자, 나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나는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에서 순서를 확인하고, 의사에게 증상을 요목조목 설명하고, 검사실을 찾아다니고, 수납을 하고.. 그 복잡한 미로 같은 과정을 나 혼자 이끌어야 했다. 남편은 그저 대기실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말이 없었다. 그 눈빛이 미안함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무기력함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다 문득 그 눈과 마주칠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병원 근처 커피숍에서. 울 곳은 많았지만, 울 수 있는 시간은 늘 잠 깐 뿐이었다.



그날도 진료가 끝난 후, 나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혼자 눈물을 삼켰다. 남편 앞에서는 씩씩한 보호자여야 했으니까. 무너질 틈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 그게 보호자의 무게였다.








< 곁에 두는 말 >


: 아픈 사람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똑같이 앓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 지금 누군가의 보호자로 살고 있는 나의 마음은, 누가 돌봐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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