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상에 누웠을 때, 머릿속을 채운 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묵직하고 시린 미안함이었다.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가보자고 할걸." "그때 문을 닫는 게 아니었는데."
한 달 전, 남편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두 줄이 선명한 키트를 보자마자 덜컥 겁부터 났다. 남편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걱정보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옮기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체 없이 안방 격리가 시작되었다. "나올 생각 하지 말고 방에서 쉬어. 밥은 문 앞에 둘게."
환자가 아닌 바이러스 취급을 하며 밥상을 문 앞에 두고 서둘러 돌아섰던 나. 안에서 열 때문에 얼마나 끙끙 앓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넘기는지 살피기보다, 문고리를 닦고 소독제를 뿌리기에 바빴던 나. 그때 문을 조금이라도 열고 얼굴이라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봐 줄걸. 외롭게 방에 갇혀 아픔을 견디고 있었을 사람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이라도 직접 건네줄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집안의 '우선순위'라는 명목하에 남편은 늘 맨 뒷줄이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열이 나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밤새 체온계를 들고 들락거리고, 작은 기침 소리에도 새벽같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아프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의 아픔에는 왜 그리도 무심했을까. 격리 해제 후에도 종종 보내오던 신호에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다. "회사 일이 많아서 그래.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거야. 타이레놀 먹고 좀 자." 가족을 위해 밖에서 싫은 소리 듣고, 무거운 책임감을 견디며 일하느라 고생만 하는 사람인데. 그 고단함이 쌓여 병이 될 때까지 강한 사람이라 단정 짓고 방치했다. 쓰러지지 않을 거라 믿고 싶었던 건, 어쩌면 편의를 위한 이기적인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입버릇처럼 했던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당장의 걱정을 피하고 싶었던 비겁한 회피였음을, 링거를 꽂고 누운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정작 아픈 사람은 남편인데, 병실 침대에 누워 오히려 안심을 시키는 쪽도 남편이었다. "나 진짜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덤덤한 목소리를 듣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멀쩡한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보조 의자에 앉아 속으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삼켰다.
미안해. 아픈 줄도 모르고, 아이들 챙기느라 혼자 두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임에도 고통을 가장 늦게 알아버려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단단한 보호자가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고 씩씩하게 이 과정을 이끌어가는 그런 사람. 하지만 현실은 자책과 후회 사이를 오가며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앓고 있었다. 보호자는 환자보다 늘 반박자 늦게 아프다는 말을, 차가운 병실 공기 속에서 비로소 실감한다.
< 곁에 두는 말 >
: 후회 없는 사랑이 없듯, 후회 없는 보호자도 없나 봅니다. 저도 매일 밤 미안함과 싸우는 중입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오늘은 그저 그 말만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