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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글쟁이 나빌레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랫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정말 너무 아프면 사랑이 아닌 걸까?

  이별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아픈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고, 이 노랫말을 쓴 류근 시인은 ‘아픈 것은 더 아프게, 슬픈 것은 더 슬프게’하려는 의도로 글을 쓴다고 한다.      


  「시인이란 그리하여 모름지기 견디는 사람이다. 비도 견디고, 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슬픔도 견디고, 쓸쓸함도 견디고, 죽음도 견디고 견디고 견디어서 마침내 시의 별자리를 남기는 사람이다. 다 살아내지 않고 조금씩 시에게 양보하는 사람이다. 시한테 가서 일러바치는 사람이다.......

                                    류근, ‘시인이란’ 중에서 」    


 그래, 이거다. 내가 비록 시를 쓰는 것은 아니나, 글쟁이는 견디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에 대해 숱한 반문을 해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견디면서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글이 되는 것이구나. 그래서 글쟁이는 견뎌야 되는 사람이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숱한 고비를 견뎌온 것이구나.     


 내 삶을 후회하지도 않고, 내 아픔에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건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견딜 수 있었고 또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견디어 온 많은 것들이 글이 되어 조금씩 꿈틀거렸다. 알에서 태어나 세상 빛을 처음 본 애벌레가 험난한 세상에서 번데기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까지 그 엄청나고 신비로운 일이 나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다.    


  아직은 매일 매일 쌓아 온 것들로 나를 보호하고, 날아오르기 전까지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 숙제다. 세상이 얼마나 험난한지 이제 겨우 알아가기 시작한 작은 번데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비는 새로운 삶을 네 번 살아가는 건 아닐까?    


  아직 알에서 깨지 않았을 때의 삶과 이제 애벌레가 되어 적들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삶, 그리고 나비가 되기 전 힘든 인내를 해야 하는 번데기의 삶, 가장 화려해 보이는 나비의 삶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사계절을, 네 가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나비의 삶에 비유한다면, 나비가 된 단계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인 해피 엔딩이 되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도, 글쟁이로서의 삶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실수와 시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성장통이라 받아들이면 무서울 것도 없다. 적어도 후회하는 일은 한 순간도 없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움츠렸던 순간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숨지도 않았다. 최대한 당당하려고 노력했고 당당했다. 씩씩했고 당찼다. 그랬으면 된 거다. 20년 전보다 10년 전이 나았고, 10년 전보다는 5년 전이 더 단단해졌으며, 5년 전보다는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 강하다.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한 번이라도 미리 경험하고 알고서 살아낸 적이 있었던가? 늘 반복되는 일상이라고는 하지만 늘 똑같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루는 술술 풀리다가 하루는 하는 일마다 문제가 생기고 잘되지 않기를 반복해 힘들기만 했던 날도 있다. 가끔은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한 새로운 하루하루를, 새로운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고, 나의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해만 간다. 아주 작고 어렸던 아이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다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삶은 나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라는 긴 여행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얻어가며, 때로는 잃어도 가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래도 삶이라는 여행은 나 혼자만 떠나는 외로운 여행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이 함께 가족이라는 모양을 만들어가며, 시행착오도 겪고 행복해 하기도 하고, 힘든 고비도 넘긴다. 이 여행의 목적지는 어쩌면 나의 아이들의 행복, 또 아이들의 홀로서기일지도 모른다. 나보다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여행, 어쩌면 삶이라는 여행에서 가장 길고도 캄캄한 동굴을 걸어 나오는 도보여행일지도 모른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제대로 빛도 보이지 않는 곳을 멈추지 않고 걷고 또 걸어 드디어 나온 곳에서 잠시 주춤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도 모두 자신들의 여행길에 오르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깨달아야 앞으로의 여행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나에게는 글이라는 친구일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과감한 선택으로 도전도 해 보고, 실패하더라도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많은 것을 놔버린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인 100세 노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 사고로 얼룩진 100년이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굴곡진 삶이 초점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자신이 즐기려는 것에는 두려움 없이 당당한 그가 보였다. 무엇이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자세로 삶이라는 여행을 떠난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겁낼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미 오랜 여행에, 또 그 여행의 여정에 조금은 지치기도 하고 설렘도 많이 사라진 후일 수 있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새로운 나에게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최종 목표에 관해 묻거나,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은 ‘가족’, ‘재산’, ‘아이들’ 이라고 답한다. 물론 그 답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한 가지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가족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은 가족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내가 오롯이 행복할 때 가족들도,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고 재산도 그 값어치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내가 행복할 방법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면 좋겠다. 그 속에서 나도 잘 알지 못했던 나를 느끼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많은 것들을 꼭 찾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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