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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May 17. 2017

사람이 필요한 날

짧은 생각

가끔씩 아주 쓸데없는 일에

슬프게도 간절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간절함은 살짜기 찾아와서

시큰거리다 마구 번지고

순식간에 나를 삼키기도 한다.


소리죽여 그 시리고 저린 부분을

떼어내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촘촘히 들어차버린 차가움과 아픔들이,

간절함으로 이름 바꿔서는 날 어지럽힌다.


몇 년 전,

합천의 밤하늘이 그랬다.

너무도 까맣고 아득했던 합천의 밤.

그리고 쏟아지는 별들이 눈물나게 아름다워서

너무 슬펐다.


잊을 수 없는 그날도 나는 무척이나 간절했던  것 같다.



일이 끝을 보이지 않는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바쁘지만

살짝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또다시 그것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날 괴롭힌다.


'윙윙-'


두 눈을 크게 뜨고서 한참을 둘러보고서야

겨우 찾아낸 모기 한 마리.

조그마한 녀석이 존재감은 엄청나다.

귓가에서 윙윙.. 눈앞에서 윙윙..

그거 하나는 대단하다.


몇 번의 헛스윙으로 정신도 산만해지고

하던 일도 잠시 멈춰버렸다.

살짝 짜증도 나고.


- 사무실에 모기가 있어!


- 아, 진짜?


- 일하는데 계속 윙윙 거리더라고..


- 벌써 모기시즌이네. 그래서 잡았어?


- 아니, 못 잡아서 그냥 선풍기 켜놨어. 근데 선풍기 켜 놓으니까 무릎이 시려서 히터도 같이 켰어. 5월 중순에.


- 아이고, 우짜냐~


이런 이야기를 그냥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준다면..


- 그런데 무릎은 왜 시려?


- 늙었나봐. 한번씩 찬바람 드는 느낌이야. 슬퍼.


- 안 늙었어. 예뻐.


쓸데없는 푸념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해주는,

작은 변화도 알아차리고 슬쩍 표시내주는,

배고플 때 불러내면 안 먹어도 옆에 있어주는

그런 편안함이 간절한 오늘이다.


사람이 그리울 때면

자꾸 기대하게 된다.

잘못인 걸 알면서도

자꾸 기대하게 된다.


오늘은 사람이 너무나 간절한 날이다.

모기 한 마리가 시린 무릎까지 더 시리게 만들어서

나 되게 슬프고 서러웠노라고 투덜거리다

이젠 그만 잘래..하고 새우잠 자고 싶은

그런 날이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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