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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시 詩 짓기 대작전

 고등학교 때 나는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시절 모든 추억은 동아리에서 만들었던 것 같다. 공식적으로는 ‘한별단’이라는 봉사 활동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비공식적으로는 (꼭 불량 서클 같은 이미지지만) ‘T.O.C (Total Of Characters)’라고 불리는 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췄다. 나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뽑혔는데 매일 점심시간, 저녁 시간에 춤 연습을 했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도시락을 2개씩 싸서 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똑같은 반찬 두 번 먹일 수 없어서 하루에 도시락 2개에 다른 반찬을 정성스레 싸주셨던 엄마의 정성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제야 진정으로 느껴진다.

 도시락을 더는 싸다니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었을 때, 엄마의 해방감은 오죽했을까.    


  어찌 되었든 도시락 2개의 위력으로 쉬는 시간에 후다닥 도시락을 먹고 점심시간에 춤 연습을 하고, 6교시 마친 청소시간에 저녁 도시락을 까(!)먹고서는 저녁 시간에 춤 연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댄스경연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는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부모님들은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싶다.    

  ‘한별단’에서 봉사 활동한답시고 돌아다니고, 춤추는 동아리에서 대회 나간다고 돌아다니고. 그러니 엄마 아빠를 안심시켜 줄 만한 활동을 해야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학교 교지편집부 일을 시키셨고, 1년에 한 번 하는 행사인 시화전에 작품을 내고 액자를 만들어야 했다. 일기나 수필은 많이 써봐서 자신 있었지만 시詩는 처음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독후감 대회에 나가서 교육감상도 받고, 교내 글짓기대회에서도 상도 종종 받았던 나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다.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것이 겁이 나려고 했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지?’    

  수업시간에도 시를 배웠고, 시의 기본적인 개념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시를 보고 이 표현법이 무엇이냐를 맞히는 문제는 눈을 감고도 맞힐 수 있는데 내가 직접 시를 쓰는 건 문제가 달랐다. 주제도 잡지 못하고 화자니 뭐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뿐.     


  빨리 시를 제출해야 액자를 주문하고 시화전을 준비할 수 있는데 나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책꽂이로 가서 우선 시집 몇 권을 챙겼다. 그리고 그 시집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시집을 정독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빈 종이만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시들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하나씩 적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배치도 해보고 뭔가 시 비스름하게 만들어갔다. 그렇게 짜깁기한 시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랑에 관한 시를 적었다. 거의 베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제출 기간이 다 되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시 한 편을 제출했고 그것은 나의 이름을 달고 화려하게 액자 위에 앉았다. 액자는 정말 멋있게 장식이 되었지만 난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가 쓰지 않은, 어디서 하나씩 주워 담아 만들어진 나의 시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누군가 이 시에 들어있는 문장들의 출처를 알고 혼낼 것만 같았다. 학교 본관 앞 잔디밭에서 시화전이 열리던 일주일은 내 생애 가장 떨리는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후에 시화전에 냈던 액자를 돌려받고 집으로 가져왔는데 글자가 보이도록 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 책장에서 뽑아온 시집에서 따온 문장들이니 엄마는 다 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멋지게 장식되었던 액자는 우리 집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아마 내가 실수인 척 깨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시詩이자 마지막 시詩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먼 곳으로 보냈다.    


  글을 쓰다 보면 이 글이 내 글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어디선가 본 듯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다독多讀을 한 사람의 경우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너무 많은 책을 읽은 탓에 내 기억 속에 좋았던 문장이나 표현들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던가.     


 처음은 온전히 완벽할 수 없다. 처음 시를 썼던 나도 벽에 부딪히며 모방을 했듯이 어떤 글이든 처음부터 내 마음에 쏙 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글을 적어가면서 내 생각이 더해지고 내 느낌이 더해져서 새로운 문장이 되고 더 나은 문장이 되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시詩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 시를 재해석해서 나의 시로 만들었을 텐데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사실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다시는 시를 쓰지 못했다. 또다시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감이 없어진 탓인지 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더 어린 시절에는 분명 동시도 쓰고 했을 텐데 나는 여전히 그때의 시화전 액자 속에 갇혀서 나의 체질을 운운하며 열심히 산문에만 열중이다. 만약 선생님께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했었더라면, 아니면 엄마한테 이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었더라면 나의 글의 세계가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요즘 유행하는 짧은 시들을 보면 그 위트에 감탄이 흘러나온다. 나도 그런 짧고 강력한 시를 써보고 싶다. 여전히, 지금도. 아직 내 안에 죄책감을 깨고 나오려면 조금 멀었나 보다.  

  한동안 유행하던 ‘좋은 글 필사하기’는 글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내 글이 아니라도 괜찮다. 좋은 글을 많이 접하면서 내 생각의 폭을 넓혀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만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진짜 내 생각을 찾아내는 작업, 그것이 숨 쉴 여백을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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