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DJ가 될 수 있을까
울산에서 나고 자라, 울산에서 사는 나였지만 방송물을 10년 먹었다고 사람들은 나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울주군 덕하예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애써 웃음을 참으며 울산 토박이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연습 때문이다. 사투리를 쓰지 않기 위해서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대본을 쓰면서 그 사람이 되어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10년을 해 온 것이다. 내가 직접 읽으면서 글을 쓰기 때문에 길이도 조절할 수 있고, 발음이 어렵거나 말이 조금 맞지 않는 문장은 바로바로 고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본을 읽을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사람마다 사용하는 단어도 달라지고 말의 어미도 달라진다.
라디오는 특히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었다.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를 MC가 끌어가야 하니까 MC의 톤과 어조로 2시간짜리 대본을 써야 했다. 그 안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덤덤하게 시를 읊듯 읽어내는 글도 쓰고, 정보 전달하는 뉴스 형식의 글도 썼다. 처음에 제일 어려운 것이 콩트였다. 너무 유치하게 쓸 수도 없고, 진짜 웃겨야 좋은건데 내가 쓰면서 이게 웃긴 건지 몰라서 MC한테 물어보고 MC가 그 대사를 직접 해보고는 ‘괜찮다’ 소리를 들어야 그 대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라디오작가는 만능이어야 한다.
이렇게 열성적으로, 혹은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하는 MC와 코너 하나를 같이 진행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국장님의 허락으로 DJ 진출을 하게 되었다.
‘하작가의 음악시간’: 하작가의 음악과 詩가 있는 시간
MC / 선선한 바람이 여름을 보내고
약간은 뜨거운 햇살이 가을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 곧 단풍이 곱게 물들고, 낙엽이 땅으로 내려오겠죠?
그러면 옛 추억도, 첫사랑도 아련히 생각나지 않나요?
오늘도 옛 추억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은
하작가와 함께 할게요~
하/ 반갑습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죠?
순식간에 온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분명히 지난주에는 더워서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오늘은 선득함에 이렇게 재킷 하나 걸치게 되더라구요.
MC/ 그래서 이렇게 멋스럽게 하고 오셨군요~?
제대로 가을 여자가 되신 하작가님,
오늘 ‘하작가의 음악시간’, 어떤 사연으로 함께 하나요?
하/ 오늘은요, 두 아이의 아빠가 보내주신 사연이에요.
바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BG IN>
MC / 우리 예쁜 두 공주, 하영이, 하윤이 엄마,
어제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들 옆에서 잠들어 있는 당신을 보니
문득 미안한 마음이 커지더라.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재능도 많은 당신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더라고.
에너지를 일하는 것으로 쓰지 못하니
더 지쳐 잠든 건 아닌가 싶고..
우리 하영이, 하윤이 이제 유치원도 가고, 어린이집도 다니니까
당신도 조금씩 예전의 당신을 찾았으면 좋겠어.
내가 도와줄게. 물론 당신 성에는 안 차겠지만, 잘 해보자
당신 이름 세 글자가 다시 반짝이면 좋겠다.
BG OUT>>
이건 ‘하작가의 음악시간’도입 부분의 대본이다. 이렇게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나는 그 사연에 어울리는 글 한 편과 노래 하나를 들려주는 코너였다. 때로는 시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어떤 소설의 일부, 에세이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 청취자의 사연은 처음에는 아직 프로그램이 자리 잡기 전이라 주변에 지인들을 이용해서 사연을 받고 내가 그 사연들을 살짝 가공하여 글을 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사연들이 들어왔다.
사연은 길이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면 조금 손을 보고, 사연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사연의 신청자가 되어 그 마음을 느껴보았다. 기쁨, 슬픔, 아픔…. 모든 것이 느껴지는 사연들을 접하고 내 진심을 담아 글을 읽고 선곡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서 진짜 소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라는 일이 참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진짜 DJ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