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4) 읽고
우연히 접한 책의 저자가 쓴 문장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경험과 감정을 증폭시키며 정리해 준다.
최근에 말 그대로 텍스트와 현실이 공명하는 현상을 경험했다.
작년 12월 3일 밤, 충격적 사건을 겪으며
한동안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이 떠나질 않았다.
그 사건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면,
책의 문장은 그 생각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다.
"내가 느낀 불안이 맞았어"라는 감정적 안도감이랄까
비상계엄 사태가 책을 읽는 시점과 매우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기에,
저자의 글이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경고"처럼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독서 경험을 더욱 생생하고 긴박하게 만들어줬다.
제도가 취약하다면, 소수의 횡포가 두렵다면,
시민으로서의 내 역할은 뭘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있을까?
사건에 대해 단순한 감정적 반응만 남아있던 내게
무언가 행동적 동기를 부여해준 책이 바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이다.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영어 원제
《 How Democracies Die》는 직역해도 동일하지만, 최신작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의 영어 원제 《Tyranny of the Minority》는 직역할 경우 '소수의 폭정' 또는 '소수의 지배'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추상적인 영어 원제를 주제와 스타일적 연속성을 강조하며 민주주의 위기를 다룬다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출판사의 똑똑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발적이면서도 독자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형식의 책 제목 역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좋다.
저자가 언급한 비상사태 조항의 악용은 권력자가 합법적 제도를 이용해 민주적 규범을 훼손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설명한다. 그 사례는 역사 속에서 살아있다. 전 세계 어느 대륙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나라의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계속 존재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내가 느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저자가 단언하는 문장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당한다'라는 문장을 통해 정당화된다.
2장 <독재의 평범성>
헌법 조항을 부당하게 사용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가령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대부분에서는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 기간에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 조항은 역시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내의 규범에 따라 적용을 받는다. 즉 정치인들은 그 조항을 주요 전쟁이나 국가적 재앙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급박한 상황에서만 유리를 깨고 비상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정부가 반복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