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루를 시(詩)로 열고 닫는다
차분히 마음을 깨우며
고요히 하루를 정리한다
따뜻하고 섬세한 언어가
아침의 기운을 부드럽게 연다
깊고 묵직한 시어가
밤의 고요 속에서 여운을 남긴다
삶의 흐름과 떠남이 고요히 얽히고,
경계에서 사랑의 열망과
그 속에 숨은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박준 시인의《마중도 배웅도 없이》(2025)를 읽고, 자기 전에는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기형도 시인의《길 위에서 중얼거리다》(1989 발표 / 2019 출간)를 읽는다. 갑자기 문학 소년이 된 기분이다. 하루를 시로 열고 닫는 루틴이라니. 아침에 박준 시인의 시로 차분히 마음을 깨우고, 저녁은 기형도 시인의 시로 고요히 하루를 정리한다.
이 루틴 덕분에 나의 하루도 시 한 편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고 섬세한 언어가 아침의 기운을 부드럽게 열어주고, 깊고 묵직한 시어들이 밤의 고요 속에서 여운을 남겼다.
삶의 흐름과 떠남, 경계의 모호함을 포착한 박준 시인의 '아침 약'이라는 시가 좋고,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담아낸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가 참 좋다. 그리고 시를 읽고 왜 이 시를 좋아하는지? 그 시어가 눈에 잘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이 나를 알아가는 시간처럼 느껴져서 좋다. 마음의 지도를 한 조각씩 완성해 가는 것처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