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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와 살고 있다

by 박병수

표지만 곁에 두어도 위로가 된다는 책 《그림의 힘》을 읽는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팔렸나?)

그리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림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이 읽고 있는 나의 책 동료들은 모두 그림의 아름다움, 그림에서 얻은 자신만의 감상을 이야기할 텐데, 나 혼자 그 속에 들어가 있지 못할 거란 열등감마저 들었다.

그림을 오랫동안 곁에 두고 색의 다양함, 선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할 것 같은데 종이에 인쇄된 그림을 보며 별다른 감상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치유를 경험한 작가의 생각만 눈으로 읽고 있다. 그림은 감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 하는데 그마저도 훈련된 사람. 감성적인 사람만 되는가 보다. 체념하고 있을 때 <프시케와 큐피드>라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금발 머리를 한 프시케는 머리를 위로 묶어, 동그란 이마를 자랑한다. 시선이 이마를 타고 내려와 두 눈을 봤을 때 특별한 눈동자의 색을 발견한다. 바다는 아니고, 호수 같다고 해야 할까? 호수 같은 눈과 작지만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이다. 쌈채소는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입에 달린 입술은 앙다물었다. 워낙 얼굴이 하애서 현대로 오더라도 립스틱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급하게 집안일을 하고 있던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당신 프시케 닮은 것 같아" 이쁨 받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목구비와 이마, 머리 등이 그림 속 여인을 모두 닮아있어 신기해서 나온 표현이었다. 요새 부쩍 살이 쪘다고 툴툴대는 아내는 그림 속 여인의 배에만 관심이 있는지, "똥배가 나온 건가?" 말하고 있다. 기가 막혀서 안방 침대에서 방방 뛰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그림을 보여주곤, "엄마 닮았지?" 말했더니 모두 그렇단다. 무지몽매한 아내를 포함해 아이들에게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대해 제대로 칭송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 읽었던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로스(큐피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프시케의 예쁨을 톡톡히 받았을 것이다. 프시케를 싫어한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았겠지만 말이다.


아프로디테의 신전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프시케의 미모를 칭송하는 걸 알게 된 아프로디테는 에로스를 불러서 프시케에게 저주의 화살을 쏘라고 명령한다. 흉측한 괴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도록 강력한 저주를 내리는 화살이다. 에로스는 쉽게 프시케의 침실에 들어가지만,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고 바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결국 프시케에게 쏴야 할 화살이 에로스에게 박히고 사랑에 빠진 에로스와 아름다운 프시케에게 험난한 시련들이 주어진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모두 얼이 빠져있다. 나는 그 표정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주 잘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를 볼 때 나오는 표정이다. 빌런의 서사가 매력적이고, 히어로의 좌절과 극복의 과정이 도드라지는 시리즈를 볼 때 아내와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표정을 짓고 몰입해서 관람한다. 기억력에 의존해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신화 속 이야기에 MSG를 마구 첨가한다. 요리할 때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백종원 씨도 놀랄 수준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살면서 다시 프시케 이야기를 접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까? 내가 말해 준 시련의 과정들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말이다. 그날 저녁 프시케와 에로스는 결국 신들의 인정을 받아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는데, 시련의 과정을 말해줄 때 흥미로워하던 아이들과 아내가 지었던 표정을 기억한다. 《그림의 힘》을 읽으며 내가 그림의 힘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좋아하는 그림 역시 하나가 생겼다. 프시케와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심지어 프시케가 2명이다. 큰 프시케(아내), 작은 프시케(큰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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