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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 May 06. 2021

어느 인스타그래머의 팔로워 늘리기

노력이 본질에 앞서는 사회

지하철에서 휴대폰 꺼내기 귀찮을 때가 있다.

요즘엔 다들 자기 기계와 놀고 있으니

앞을 바라봐도 남의 눈 마주침이 없어 편하다.

눈과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떡하니 보이는

남의 휴대폰 화

미안하게도 훔쳐보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이가 인스타그램 피드들에 하트를 쉼 없이 눌러댔다.

사진 위에 하트 풍선이 연달아 터진다.

10초 만에 10개쯤.

디지털 세대의 탁월한 시각 인식력에 감탄할 뻔했으나

곧이어 유사한 해시태그로 바꾸어 검색.

정렬은 최근 게시물 순.

이번에는 15초에 15개 정도.

다시 해시태그를 바꾸어 반복.

50여 개의 하트를 만드는데 겨우 1분 남짓.

장담하건대 그는 사진을 보지 않는다.

왜냐태그와 무관한 주제의 사진에도

어김없이 예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로 숫자 늘리기.

디지털 계급 사회에서 올라서기 위한 또 다른 노력.

노력의 결과는 정직하게도 숫자로 환원된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세상.


학연도 지연도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며

어느 부촌의 학교와 친구들을 중매한 부모의 노력.

입시와 취업을 위해서 쌓았던 허위 스펙.

승진을 위해 부풀려 놓은 경영 성과 지표들.

계급이라는 작은 원안에 들어가기 위에

숫자로 점철되던 영악한 노력들.


학생부의 봉사활동 점수도

사진에 달린 하트의 개수도

그것의 본질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숫자가 본질에 앞서는 사회.

노력이 본질에 앞서는 사회.

당연시되어 잘못을 느끼기에는 둔감한 윤리.

 

노력은 성의, 의지, 열정 등의 윤리적인

단어들로 우리에게 강요되고

급기야 그것들은 나에게 죄를 묻는다.

죄인은 본질을 망각했다.


낯선 이에게 받은 '좋아요' 하나

모두에게 찐한 기쁨이면 좋겠다.

세상 숫자들을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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