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래의 마지막 증언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또 실수했고,
갈등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본소득이
그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어떤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번 경험한 것을
잊지 못합니다.
삶이 곧바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감각,
선택이 곧바로 파멸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을 경험한 사회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기본소득 이후
세상은
조용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덜 두려워했고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으며
조금 더 쉽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통계보다 먼저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회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건 위에서
사람들은
다시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택들은
처음에는
아주 작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직업이 아닌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평생의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직업이 곧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지 않는 많은 일들이
사람들의 주요한 업적이 되었습니다.
봉사,
창작,
돌봄,
그리고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일들.
기본소득을 받으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부정적인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삶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들이
사회 전체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다시 도달했습니다.
이 시스템이
한 나라에서 가능하다면
지구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국가 기본소득은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다음 단계는
지구 기본소득이었습니다.
국경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기후와 자원,
그리고 경제는
이미 하나의 행성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그 사실을
제도 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느린 변화였고
수많은 토론과
수많은 실험을 거쳐
조금씩 확장된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흐름은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변화의 시작을
기록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것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이제
나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가능한가.
지금의 나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beyond capitalism
—자본주의 이후—
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