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시간강도의 등장

늘 탈탈 털리는 엄마

by 이꺽정


나는 꽤 계획적인 편이라 학생 시절에도, 그리고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플래너를 열심히 작성하고는 했다. 오늘의 해야 할 일과 스케줄을 세세하게 적어두고, 대략적으로 펼쳐질 오늘 하루를 예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미리 하루를 준비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당황하고 싶지 않은 나의 노력이 더해진 습관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난 후 나의 플래너는 책상 저편으로 내팽개쳐졌다. 미리 정해놓은 일정이나 나의 계획을 단숨에 폭파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강한 시간점유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ㅡ 혹시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이런 조심스러운 양해의 말이 아기에게 가능할 리 없다. 커다란 루틴은 있지만 그 안에서 아기의 하루는 예측불허, 제각각이다. 어떤 날은 낮잠을 오래 잘 것 같아서 뭘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30분 만에 번쩍 눈을 뜨고 다시 잠들지 않아서 계획해 둔 일은 반의 반도 하지 못하고 아기를 다시 재우느라 침대에서 씨름을 했고, 어떤 날은 또 금방 일어날 것 같아서 후다닥 밥을 먹고 언제 일어나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 시간을 넘게 쿨쿨 자는 바람에 나는 그냥저냥 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기가 얌전히 잘 있어주어서 수월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날도 있고, 아기가 도통 낮잠을 자지 않고 계속 칭얼거리는 통에 점심 무렵까지 쫄쫄 굶고 아기를 어르고 달래는 날도 많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 혼자 30분쯤 놀 수 있다고 알려주면 좋으련만,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엄마가 나에게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나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때로는 먹던 밥을 내려놓고, 하던 일은 내려놓고 아기에게 달려간다. 아기와의 눈치싸움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나의 하루일과는 늘 엇박으로 삐걱거린다.

그래서 플래너를 책상 어딘가로 던져버리게 되었다. 이것저것 적혀있는 나의 계획이 육아를 하면서는 당연히 순탄하고 온전할 리가 없기에, 계획이 어긋날 때마다 낮잠에서 깨고, 이유 없이 칭얼거리는 아기를 티끌만큼이라도 원망하거나 탓하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되는대로 오늘 우리의 하루를 만들어보자는 게 새로운 다짐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의 매일은 타임어택이 되었다. 아기가 낮잠을 얼마나 잘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 동안 요리를 해서 제대로 된 한 끼 차려먹기, 아기가 얼마나 앉아있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 동안 빨래 후다닥 끝내기,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글 한편 쓰기! 아기가 으아아앙 시간종료를 알리기 전까지 나는 빠릿빠릿 움직인다. 자연스레 높아지는 효율과 집중력,

나의 시간은 이 귀여운 날강도에게 늘 탈탈 털리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하루하루임을 알기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시간도 사랑도 열심히 퍼붓고 싶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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