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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Jun 29. 2021

투박한 취향과 소박한 기쁨

수박과 호박빵, 그리고 꽃다발




나는 투박한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소박한 것도,



귀찮고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내 성향도 이런 취향에 큰 영향을 미쳐서,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는 투박 혹은 소박 정도의 단어로 갈음되는 것들은 대개 좋아한다.

세련되고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란 나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참 멀고도 낯설게 느껴진다.


수박을 반 잘라서 큰 숟가락으로 대충대충 파내서 얼음과 우유를 부어 만든 화채를 참 달게 먹고, 떡도 알록달록 예쁘고 매끈매끈한 절편이나 꿀떡보다는 모양은 약간 괴상해도 자연의 맛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설기나 큼지막하게 썰어내어 랩에 대충 둘둘 포장한 호박빵을 좋아한다.



와인잔에 따라 마시는 향기로운 와인, 정갈하게 잘려서 꿀이나 견과류가 탐스럽게 뿌려진 치즈를 즐기고 싶은 날도 물론 있지만, 엄마가 오이와 양파를 착착착 잘라서 매콤하게 대충 무쳐준 골뱅이 무침에 물컵에 따라 마시는 맥주 쪽이 언제나 조금은 더 솔깃한 것도 사실이다.



꽃을 살 때도 이런 투박한 취향이 결코 변할 리는 없다.

선물 받는 꽃이나, 이미 꽃다발로 만들어진 걸 살 때는 가장 예쁘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심사숙고해서 고르지만 길가다 꽃집에서 꽃을 살 때면, 가장 크고 싱싱한 것으로 한 뭉텅이는 사는 과감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혹시라도 꽃집에서 “포장해드릴까요?”라고 물으시면, “그냥 들고 갈 수 있게만 싸주세요”라고 말씀드린다. 종이나 신문으로 살짝 두른 투박하지만 풍성한 꽃 한 다발이 주는 기쁨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회사에서 그래도 몇 년간 꽃꽂이 동아리를 하면서 꽃을 다듬는 방법이나, 좀 더 보기 좋게 꽂는 방법에 대해서도 꽤 배웠지만, 심지어 예전에는 없었던 꽃 전용 가위까지 동아리에서 하나씩 선물을 해주었지만! 

언제나 나는 최소한의 공정(?)을 거치기 위해서 뿌리 쪽 줄기를 어슷하게 자르고, 시들고 힘없는 이파리 몇 개를 뜯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곤 한다. 그럼에도 꽃은 저마다의 예쁨을 가지고 있어서 투박한 손을 통해서도 대박적 예쁨을 뽐내곤 한다.


아무래도 나는 맛을, 아름다움을 그냥 툭 놓고 가는,

슬쩍 밀어 넣고 자리를 뜨는 그런 무뚝뚝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미 인정하긴 했지만, 결코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꼭 강조해본다.


투박한 취향에는 늘 소박한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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