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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Jun 27. 2021

우리집 FAQ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뭐야?




우리 집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찾는 일이다. 때때로 노트북이나 핸드폰이 멋대로 업데이트되는 바람에 보물처럼 소중하게 저장하고 있던 비밀번호를 훌훌 날려버리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외계어처럼 알파벳과 숫자가 줄지어 쓰여있는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쓰여있는 스티커를 찾기 위하여 고군분투해야 한다.


따로 찍어두거나, 적어두거나하는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찍어두면 그 위에 새로운 사진들이 쌓였고, 적어두면 언제 적어두었냐는 듯 사라졌다. 비밀번호를 바꾸는 방법도 찾아보면 분명 있을 텐데, 그 방법을 찾는 게 꽤나 큰 귀찮음이라 알고 있는 작은 귀찮음으로 근근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미련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엄마는 언제나 어떤 물건을 어디에 놓아둘 때, "엄마가 이거 여기에 둘 테니 잘 기억해야 한다"라고 나머지 가족들에게 당부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누구도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그때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늘어놓으며 집에 있는 수납장이랑 수납장은 다 뒤져서 힘겹게 찾아내고는 "어휴, 이게 여기 있었네!"라는 한마디와 함께 발굴의 기쁨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에도 돗자리를 찾아 얼마간을 찾아 헤맸고, 결국 되게 시시한 위치에서 찾아내게 되었다.


이러한 와이파이 대소동과 돗자리 대여정을 겪으면서, 조금은 엉뚱하게 우리집 FAQ도 어딘가에 잘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거기에서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나름대로 귀찮은 일이겠지만 집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궁금증들을 몇 번 클릭으로 찾아낼 수 있는, 혹은 "진희야~와이파이 비밀번호 뭐야?"라고 물어보면 알아서 척척 대답해주는 박사님 같은 우리집 인공지능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아빠가 십 수일째 찾아 헤매고 있는 치실의 행방도 적혀있으면 좋겠고, 동생이 할미개의 샴푸를 소분할 때 물과의 비율을 얼마로 맞추어야 하는지, 세탁조를 청소할 때 온수를 몇 도 이하로 해야 하는지, 집에 있는 커피머신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버튼을 몇 번 누르면 되는 것인지, 샤워기 필터를 언제 마지막으로 갈았는지,


일부러 기억하려고 해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유실되어 버리는 일상의 사소한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둔 우리집 FAQ 또는 위키피디아가 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을 만드는 수고로움의 주체가 결코 나는 아니었으면 더 좋겠다.


이렇게 오늘도 생각만 하면서 결코 몸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때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잃어버려서 또 스티커를 찾아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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