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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Jun 25. 2021

다이어트 앞, 유자비한 여자

이번엔 진짜야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언하고, 도움을 받으라는 꿀팁이 많기에 함께 점심을 먹는 절친한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멋지게 선언했다.


ㅡ 나 이제 진짜 다이어트한다!


이러한 나의 선언에 어쩐지 심드렁한 모두들. 나는 이 꿀팁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고 실천에 옮긴 건데 어째서 모두가 심드렁한 걸까? 열화와 같은 성원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응원의 말 정도는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일이 생겼으니 맛있는 걸 먹어보자.

그들이 왜 심드렁했는지 깨닫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심으로는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종종 몸이 너무 속세에 찌든 것 같을 때, 먹은 게 없어도 배가 무거울 때면 맛으로도 샐러드를 즐겨왔던 나이기에 샐러드를 먹는 게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물론, 거기에 함께 밥을 먹는 대리님이 사 온 만두 한 알도 먹고, 친한 동기가 사 온 김밥도 몇 개 곁들여먹고 샐러드를 먹었는데 한껏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반증이겠지. 짜장면에 단무지를 먹는 것 정도로 생각하며 탄수화물을 무자비하게 곁들이는 이 시대의 다이어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으로 간단하게! 먹겠다고 불끈 다짐을 해보지만, 주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면 오늘 먹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것들이 불쑥 나타난다.


예를 들면, 엄마가 만들어준 차돌 된장찌개라거나, 할머니가 보내주신 싱싱한 낙지로 만든 오늘 먹지 않으면 내일은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매콤한 낙지볶음.


거기에 더 강력한 녀석이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것은 바로 지친 하루의 끝을 감싸주기 위해 나타난 자비로운 나,


ㅡ 오늘 너 정말 힘들었는데?

ㅡ 이거 지금 안 먹으면 내일은 없을 텐데?

ㅡ 괜찮아. 괜찮아. 오늘만 먹어!


그녀의 자비에 오늘도 절반쯤은 굴복해버리고 마는 나,

탄수화물에 있어서는 그렇게나 무자비하면서, 다이어트 앞에서는 한없이 유자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치던 양치기 소년에게 언젠가 진짜 늑대가 나타났듯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주변 사람들에게 주장해본다.


나, 다이어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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