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꺽정 May 04. 2021

여행과 노래의 상관관계

오마이걸 WINDY DAY. 그리고 베트남 사파



평소보다 훨씬 더 고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맞이한 하루.


날씨가 금방 더워지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추워져서 티 하나만 입고 나온 나를 원망하는 아침이었다. 이렇게 살짝 서늘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몇 년 전에 친한 친구와 단둘이 떠났던 베트남 사파가 떠오른다. 그때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걱정도 없었고, 그만큼 철도 없었던지라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콧잔등이 시큰해질 만큼 그립기도 하다.


그래,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어김없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즐거웠던 추억에 흠뻑 빠졌다가, 기운을 차리는 건 내가 나름대로 터득한 기분전환 방법이다. 짤막한 노래 한 곡을 듣는 동안 무거운 일상과 한발 멀어져서 신났던 어느 때, 혹은 아름다웠던 어느 때의 나를 잠시 동안 바라보고 돌아오면 어쩐지 그런 소중한 날들을 지나온 나도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곤 한다.


날씨가 조금은 쌀쌀하고, 비도 내리니까 사파로 떠나보자. 플레이리스트에는 오마이걸의 WINDY DAY.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오마이걸의 WINDY DAY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고, 여행을 떠나던 날에도, 여행을 가서도 종종 들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노래만 들으면 사파의 풍경이 굉장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바람이나 기분까지 생생해서 사파를 추억하고 싶은 특별한 날에만 아껴 듣는다.


하노이에서 버스를 4시간도 넘게 타고 가야 했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오른 길이었는데 정말 구름 위에 있는 듯한 풍경에, 깟깟마을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마을에, 너무 더워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나던 하노이와는 조금 다른 고산지대의 느낌에,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았던 여행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사파를 떠올리곤 한다.


다랭이논을 배경 삼아서 열심히 언덕을 오르고 내리던 그때의 나,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오레오와 오렌지주스를 사고 기운을 내어 남은 길을 걷던 나, 풍경이 좋아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한 그릇 가득 쌀국수를 먹고 멋진 풍경으로 마음까지 채웠던 그때의 나. 그때 느꼈던 자유로움과 활력이 부싯돌이 되어 다시 탁탁, 마음에 열심히 불을 붙인다.




베트남답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 서로 몸을 붙이고 잠을 자던 귀여운 존재들의 모습도 남아있고, 인생샷을 찍어주겠다며 바닥에 쭈그려 앉기를 오백 번쯤 했을 내 친구의 고마운 모습도 여전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야심 차게 우비를 사서 그 우중에 등산을 했던 것도, 추위를 녹이기 위해 아무 카페에서나 마셔도 맛있던 달달한 연유 커피를 추억하는 것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추억을 꺼내보기를 거듭하다 보면 몽글몽글 실오라기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지쳐서 식은 마음과 일상에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가 감도는 게 느껴진다.


잠시 만나고 온 바람이 불던 사파의 날씨에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뭐니 뭐니 해도


머리가 엉망이 되어도 좋아. 기분은 좋으니까


기분만 좋다면 머리가 엉망이 되어도 괜찮다. 아무리 바람이 부는 날이라도 즐겁고 신나는 날로 지날 수 있다. 세상의 풍파 앞에 조금은 가볍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길 바래보며 오늘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춥고 싸늘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마음에는 훈풍이 살랑 불었다.


작가의 이전글 도시농부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