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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Apr 30. 2021

도시농부의 꿈

적당한 빛과 물과 바람, 그리고 사랑



독립을 하면서 가장 처음 가졌던 큰 꿈은 바로 플랜테리어


작은집에 큼직큼직 멋진 화분들을 두긴 어렵겠지만, 내 마음에 쏙 드는 작은 화분들을 몇 개 골라서 키우는 것이었다. 인테리어 감성 샷에서 보면 나무의 따뜻한 느낌과 푸릇한 잎사귀의 조화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도시농부 여정의 첫걸음. 식물 고르기


작은 화분이지만 이왕이면 가계경제에 보탬이 되면 좋을 것 같아서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위주로 구매했다.

잎을 따서 파스타에 넣거나 페스토를 만들어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바질, 모히또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는 애플민트, 고기 구워 먹어야 하니까 로즈메리까지! 이 농작물들과 함께라면 미슐랭 가이드가 부럽지 않은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렇게 도착한 화분들에게 정성을 쏟기가 한참이었다. 볕이 좋을 날에는 바깥에 내놓고, 요즘 같은 황사비는 모르겠지만 비가 화분에게는 약이라기에 또 비가 오면 열심히 바깥에 내놓았다. 신기하게도 비를 맞은 다음날에는 식물들에게 생생한 활력이 차오른 듯 보였다.


처음으로 바질을 수확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것이 농부의 기쁨인가 싶어서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배웠던 나희덕 시인의 '배추의 마음'이라는 시까지 기억해내고 그 마음에 공감된다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나의 도시농부 라이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어렵지 않게 회상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작은 화분 몇 개도 건사하느라 분주했는데, 매 가을이면 일 년 내 농사지은 소중한 쌀을 몇 가마니씩 보내주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괜시리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잎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따서 바구니에 담고, 심혈을 기울여 인증샷까지 찍어두었다. 바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올리브 오일과 바질 잎만 들어간 파스타인데도 꿀맛이었다.


그렇게 미식의 기쁨을 준 나의 첫 농작물들은 날이 추워지자 점차 기력을 잃어가더니 곧 떠나게 되었다.




원래 나는 식물을 기르는 데 그렇게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며칠씩 출장을 가느라 집을 비우면 돌아온 날에는 화분들은 힘을 잃고 파들파들 힘겹게 서있곤 했다. 동생은 우리 집에 딱 한 마리 있는 동물을 기르기에 바빴기 때문에 식물은 온전히 내 몫이었기 때문에 내가 집에 없으면 돌봐줄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화분들이 걱정되어서 여행도, 출장도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던 차에 떠나버린 식물들, 축 늘어져서 소생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화분들을 정리하면서 조금 더 내 삶에도 내 맘에도 여유가 있을 때 꼭 다시 도시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무언가를 돌보고, 관심을 쏟고, 사랑을 한다는 일이 참 어렵다. 그래도 작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힘내서 영차영차 자라나는 푸른 존재들이 너무 예뻐서 내 마음에는 여전히 도시농부의 꿈이 조그맣게 자라나고 있다.


적당한 빛과 물과 바람,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한 뼘만큼 조그마한 땅들과 내 무릎도 채 닿지 못하는 자그마한 친구들과 더불어 사는 삶은 참 따뜻하고 다정한 삶이 된다.


지금은 일단 그렇게 많은 관심이 없어도 튼튼히 자라나는 시크한 성격의 친구들과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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