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은혜중학교 교육복지실에서 청소년 평화 노리단의 세 번째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은혜중 아이들은 공기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복지실의 은아 선생님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고 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공기알을 따라 아이들의 눈동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며, ‘논다’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공기놀이에 집중하는 동안은 다른 생각이 사라지고, 실력이 느는 것을 체감하며, 누구와도 온전히 실력으로 겨룰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세 학교 교육복지실 선생님들의 정성 덕분에 무려 26명의 아이들이 함께 모였다. 5월 31일에 열릴 ‘북부 청소년 어울림 마당’에서 놀이 부스를 운영할 예정이라, 이날은 놀이를 미리 연습해 보는 시간이었다. 마침 그날이 단오라, 정희 선생님께서 장명루 만들기 재료도 함께 준비해 오셨다.
처음 접하는 실 놀이였지만, 아이들은 정희 선생님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금세 따라 했지만, 대다수는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포기하려 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성취해 본 경험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팔찌를 직접 만들지 않아도, 그것을 눈으로 보고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후 아이들은 모둠별로 앉아, 자신들이 맡게 될 놀이 부스의 진행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만남이다 보니, 아이들은 놀이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장명루 만들기에 어려움을 겪던 모습은 사라지고, 각자 맡은 놀이에 대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서까지 만들었다.
청소년 평화 노리단 활동이 어느덧 세 번째인데, 벌써 아이들이 놀이 부스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모인 데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겪으며 노는 법조차 낯설어진 아이들인데, 이런 기회가 혹시 너무 이른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이 부스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머쓱해졌다.
아이들이 놀이 부스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교육복지실에서 간식을 준비했다. 미리 가져온 소시지를 빵에 넣고 소스를 뿌리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50인분의 핫도그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놀이 부스 준비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복지실로 들어와 남은 일을 함께 도와주었다. 놀이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한결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중 한 아이는 휴대전화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핫도그 세팅이 예뻐요.’
왜 그런 방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문자를 보고
“고마워. 소스 뿌리는 거 도와줄래?”라고 했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첩을 받아 들었다. 간식 준비를 도와주겠다는 건, 어쩌면 아이들이 낯선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아닐까.
일정이 마무리되고 짐을 정리해 차에 실으니 짐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다시 보니,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함께 놀이 부스를 준비할 때는 조금 굳은 표정이었다. 물론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핫도그를 먹을 때는 새로운 친구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고, 조용히 있던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앉아 그들을 바라보며 핫도그를 먹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릴 적 골목에서 부딪히며 익혔던 놀이를 이제는 교실에서 배워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 시간도, 공간도 부족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금세 빠져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이라도 놀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