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중인 초딩 아들 환이가
‘엄마, 용돈으로 건담 사고 싶어. 그래도 돼?’
‘응’
엄마의 허락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마루 아래에 있던 내 운동화를 신기 편하게 돌려놓아 줘서 내심 놀랐다. 신발 신는 시간까지 아껴주고 싶을 만큼 신난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함께 마트에 가는 길 내내 그 설렘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장난감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문득 20여 년 전 다문화 어린이집에서 미술 수업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매주 수업이 끝나면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던 꼬마가 있었다. 귀여운 얼굴과 표정, 잰걸음은 생생한데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애썼다. 그렇게 애쓰던 어느 날, 불현듯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전경호. 엄마는 인도네시아분이고 아빠는 한국분이었다.
다문화어린이집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국적 구성이 다양하고, 선생님들은 다양한 나라에 대한 정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동안 상대방의 상황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던 시절이었다. 경호도 그랬다. 이주민 부모의 경우 낯선 나라에서 서툰 외국어를 내뱉기보다는 조용한 인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게 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린이집에 처음 왔을 때 네 살이던 경호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듯 반짝이던 눈빛과 환한 웃음은 지금도 선명하다. 특히 수업이 끝나면 현관으로 달려가 내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수업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나는 매주 궁금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건가? 배우는 게 좋은 건가? 사람이 좋은 건가? 어쨌든 경호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면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늘 함께 배웅을 해주셨는데, 어린 경호가 제일 먼저 달려가 내 신발을 바로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에 여러 어른이 현관에서 늘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깊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고마움을 신발로 표현하던 경호는 이내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선생님!'을 수십 번 외치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말을 배우고 나서는 더 이상 신발을 바로 놓아주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그 어린이의 순수한 배려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지금은 이십 대 청년이 되었을 경호. 당시 어린 경호와의 교감을 통해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 환이가 내 신발을 돌려 놓아주는 모습 보며 그때의 소중한 감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곤 한다. 성장하는 작은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은 언제나 나에게 따뜻한 위로이고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오는 흐뭇한 기억이다.
#신발 돌려주는 아이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귀여워 #마음이 자라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