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브런치
대추리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성동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였다.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거리행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대추리’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평택에 살던 나는,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평택경찰서 앞에 모여 서 있던 아주머니·아저씨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2006년, 대추리는 넓은 들판과 눈에 익은 집들이 모여 있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많은 이들이 그리운 고향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대추리평화마을’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지도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때의 아주머니들은 이제 모두 ‘할머니’가 되셨다.
어르신들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23년, ‘어르신 놀이터’ 사업을 하게 되면서였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다. 그림도, 사람도 모두 낯설었다.
하지만 첫 수업을 지나자, 할머니들은 조금씩 미술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다.
농사일이 한창 바쁜 시기에도 휴식을 뒤로하고 경로당으로 모이셨고, 때로는 집에서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친 몸으로도 단정히 차려입고 수업에 오셨다.
젊은 사람들은 마을을 돌아보는데 10분 남짓 걸리지만 보행기에 의지한 할머니들은 집에서 경로당까지 20여분이 넘게 걸린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집 밖을 나서기조차 어려운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지, 차츰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색연필을 손에 쥐는 것도 어려웠고, 컬러링 북에 색을 칠하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목련을 색칠할 때는 봄빛 가득한 목련 나무가 마음속에 피어나고, 들녘을 그릴 때는 떠나온 고향의 들판과 하늘이 함께 떠오른다.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풍경들이 그림을 따라 다시 피어난다.
그림을 그리며 할머니들은 참 많이 웃으셨다.
덜 익은 가지 색 때문에 웃고, 산딸기가 너무 시어 보인다며 웃고, 나무 위에 지은 집이 너무 알록달록하다며 한바탕 웃는다.
“모이면 웃고, 웃는 게 인사”라고 하시며 함께 모여 그저 웃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할머니들이 낯설었던 백드롭 페인팅 기법으로 그린 하늘과 노을 작품이다.
‘들판’, ‘들녘’, ‘하늘’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어김없이 고향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떤 재료로 무얼 그리든, 할머니들은 결국 고향을 마음으로 불러내 그림으로 표현하신다.
내년에도 우리는 할머니들의 소중한 발걸음이 이어지길 바란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이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전시_ 2025년 12월 2일부터 31일까지
평택 배다리도서관 (경기도 평택시 죽백6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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