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 (파울 슈마츠니 감독, 2008)
음악은 참으로 중요하다. 사람을 치유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창시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씨(이하 호세 할아버지)는 “음악과 친숙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는 음악교육을 통해 빈민가 아이들을 위험한 사회로부터 보호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시스테마’는 ‘시스템’의 스페인어지만 정관사 ‘엘’과 함께 – 엘 시스테마 -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1975년 빈민가의 차고에서 11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던 엘 시스테마는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2010년) 184개 센터로 증가했고, 정부가 운영비의 90%를 지원하고 있었다. (현재, 전국 400여 개 센터에서 70만여 명이 가입된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 시절, 가난한 지역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마약과 폭력, 아동포르노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거리 곳곳은 우범지대로, 나갔다가는 총 맞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실제 등하굣길에서 마저 총 맞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같은 안전한 실내에서 보호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방과 후에는 센터에서 음악을 배우도록 모든 아이에게 기회를 주었다. 악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음악에 입문하는 어린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악기를 가지고 오케스트라의 기초를 연습한다. 어리디어린 아이들이 소리도 나지 않는 종이 악기를 들고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앉아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서 너무나 귀엽다.
빈민가 지역사회의 위험성과 학교, 센터의 중요성을 잘 아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물질적인 지원은 부모가 못 하니 정부가 하고, 학부모는 등하굣길에 아이와 동행하거나, 공연이 있을 때 참관하고 아이들을 북돋아 준다.
엘 시스테마에 참여한 아이들은 합창과 합주를 통해 협동, 이해, 질서, 소속감, 책임감 등을 배운다.
호세 할아버지는 이것이 음악교육의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함께 노래하거나 연주할 때는, 자신의 소리는 물론 다른 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우러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만 보더라도 악기를 다룬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는 그리 훌륭한 연주를 하지 못했을지라도, 함께 연주하면 소리가 그럴듯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악기의 다양한 음색과 성부의 어울림도 있지만, 아이 하나하나가 전체와 어울리도록 자신의 소리를 조정해야만 가능하다. 이렇게 합주하면서 그럴듯해진 음악을 들으면 만족감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진다.
호세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그 힘으로 스스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엘 시스테마의 음악교육은 음악 그 자체를 즐기도록 했다.
완벽한 것도 좋지만 틀려도 괜찮다고 교사들은 말해주었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도록 마음을 돌보았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치유되었고, 많은 아이가 함께 성장했다. 악기를 금방 그만두지 않았고 오래 지속적으로 배웠으며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열정도 보여주었다.
엘 시스테마의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공연 있는 토요일마다 성인 전문가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한다. 이들의 공연은 정통 클래식은 물론 '맘보'등 신나는 음악도 연주하고, 연주자가 노래도 하고 춤까지 춘다. 관객도 그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하고 춤춘다. 아이들이 평소에도 곳곳에서 춤추는 모습이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번 나온다. 어쩌면 이것은 남미인들의 특성일 수도 있다. 나도 실제 여러 번 목격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심지어 아침 조회 때 교가를 들으면서도 엉덩이를 씰룩이는 아이들을 본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것이 남미인들의 특성이라고만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사회 분위기가 음악과 친숙하도록 조성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이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전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오래전에 도입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도 1인 1 악기 연주 활동이나, 음악 동아리 활동도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사회분위기는 음악과 친숙할까, 의구심이 든다.
저 가난한 나라에서는 모두에게 기회가 있었다. 악기도 지원받고, 엘 시스테마를 통해 전문 연주가가 된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친다.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시스템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는 바이올린 정도면 모를까 거의 모든 악기를 쉽게 배울 수 없다. 악기도 비싸고 레슨비도 비싸고....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저렴한 비용으로 바이올린 등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후 중, 고등학교에서는 대입을 위해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성적관리를 위한 것을 제외하고 즐거움을 위한 예술교육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악기를 배웠어도 성장하면서 점점 음악과는 멀어진다.
클래식 음악 공연도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있으나 아직 그리 흔하지 않고 관람료도 비싸다.
결국 친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일상에서 즐기는 정도가 되려면 어릴 적부터 누구나 즐겁게 음악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야 하고 그 즐거움을 지속시켜주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음악을 쉽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흔하게 음악교육의 기회가 제공되길,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거나 노래 한곡쯤은 맛깔나게 부를 수 있거나
혹은 곳곳에서 음악이 들리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신나게 출 수 있거나....
모두가 함께 음악을 누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