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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쏘에 Sep 25. 2020

서로의 응원이 필요한 커플에게

패터슨 (짐 자무쉬 감독, 2016)

주인공 패터슨은 패터슨에 산다. 우리나라로 치면 성수동에 사는 성수 씨 느낌이랄까.

그는 버스 운전사이다.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 출근하고 같은 루트를 반복해서 운전하다 퇴근해서 아내와 저녁 먹고, 

개를 산책시킬 겸 근처 바에서 맥주를 한 잔 한 후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늘 같은 일상을 살면서 지루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버스에 타는 다채로운 승객들의 소소한 대화를 듣기도 하고, 버스가 퍼져버리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맞닥뜨린다. 저녁식사 후 늘 같은 시간에 가는 바에서도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반복되는 삶을 살지만 주위의 것들이 늘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그가 삶에 스스로 특별함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시를 쓴다는 거다.

버스 운행 시작을 기다리면서, 점심을 먹으면서, 집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시를 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비밀 공책에만 간직한다.

그의 시는, 아주 하찮은 성냥갑부터 그가 매일 마시는 맥주 한 잔, 그의 집, 버스 운행, 어릴 적 듣던 노래 한 소절, 사랑하는 아내까지 그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다. 

시 작법을 따르지 않고 말하듯 쓰는 그의 시는, 영화에서 그의 나래이션과 손글씨로 미묘하게 여러 번 다듬어지며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어쩌면 그는 그가 사랑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의사이면서, 일상적 사물들과 보통사람을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시로 표현해 후대 시인들에게 영향을 준 실존했던 시인이다. 

패터슨이 아내에게 읽어주는 그의 시 「다름이 아니라」를 들으면 누구라도, 패터슨이 버스에서 승객들의 소소한 대화를 듣고 보여주던 미소, 그 같은 미소를 띠게 될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내가

먹어버렸어


아마 당신이

아침 식사로 먹으려고

남겨둔 것일 텐데


용서해요, 헌데

아주 맛있었어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그가 낸 수많은 시집 중에는 그의 고향 패터슨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패터슨』도 있다. 

주인공 패터슨과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자신을 둘러싼 평이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각적으로 느끼고 표현해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패터슨의 일상에 대한 시각과 그것을 표현한 시도 좋지만, 

그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그가 아내 로라를 사랑하는 모습이다.

패터슨은 잠에서 깬 후 늘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쓰다듬어 준 후 일어난다. 아내가 커튼, 벽, 바닥 심지어 옷까지 집안의 구석구석에 페인트로 작품 활동을 해도, 혹여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칭찬한다. “예쁘네”같이 두루뭉술 영혼 없는 칭찬이 아니라 “아주 근사해. 원이 다양해서 좋네”처럼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철없이 비싼 기타를 사겠다고 할 때도, 언젠가 컨트리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되고도 남는다고 말해준다. 듣도 보도 못한 맛없는 저녁 요리에 당황스러워도 “아주 독창적이야, 새로운 레시피를 찾은 거야?”라고 말해준다. 컵케이크를 만들어 팔아서 대박 나면 사업을 하겠다고 할 때도 지지해 준다. 만들 때는 꾸미는 솜씨가 좋다며 북돋고, 팔러 나갈 때도 차에 실어주면서 “모아놓으니까 아주 근사해”라며 응원한다.

이렇게 패터슨은 꿈이 너무나도 많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그녀가 하는 일들이 허무맹랑하고 실현 불가능해 보여도 면박 주지 않는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지지한다.  

그리고 그녀 또한 패터슨이 시를 쓰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힘을 실어준다. 

그녀는 자주 시를 읽어달라고 한다.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를 읽어줄 때는 같은 마음으로 좋아할 뿐 아니라 “당신 시도 이 시만큼 좋아”라며 그의 시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가 쓰고 있는 시에 대해서도 자주 물어보고 완성되면 빨리 읽고 싶다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시들을 그냥 두지 말라고, 세상에 내놓자고 적극 권한다. 그리고 복사본을 만들어 놓으라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그녀의 말과 표정을 보면 그의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복사본을 만들지 않아 한 권뿐인 그의 노트가 망가졌을 때, “거봐, 내가 복사본 만들라고 했잖아”라 할 법도 한데,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속상한 남편보다 더 속상해하고 망가뜨린 애완견 마빈을 벌준다. 


그런 그녀에 대한 패터슨의 사랑 시, 「펌킨」


펌킨       -패터슨


귀여운 내 작은 호박,

난 이따금 다른 여자들을 떠올리곤 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혹여라도 당신이 날 떠난다면

난 심장을 뜯어내서는

다시는 되돌려놓지 않을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없으니까


참 쑥스럽네


자극적인 부부 얘기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패터슨의 느리게 흐르는 소소한 일상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없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 영화가 참 좋다. 마음을 놓고 쉬는 느낌. 

이들처럼 큰 긴장감 없이 평화롭게, 각자의 삶을 그리고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 삶을 말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표현하면서 살면 더 좋을 것이다. 

서로의 작품을 그 사람만큼 좋아하고 지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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