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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 쏘에 Oct 24. 2020

낯선 곳에 있는 이에게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2006)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할 때 음식만큼 좋은 것이 없다.

외국에 살다 보면 현지인들은 그들의 음식을 만들어 나를 초대하고, 나도 우리 음식을 만들어 그들을 초대해서 나누게 된다. 그 시간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참 소중하고 좋다.

그런데 반대로 음식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없다. 시각적, 후각적으로 낯선 음식은 사람들이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핀란드에서 식당을 연 사치에는, 초밥만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오니기리 같은 일본의 다른 음식을 맛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카모메 식당의 외관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스시 집과는 다르다. 동네 식당처럼 편안해 보이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낯설어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보다 못한 미도리가 오니기리에 넣을 재료로 핀란드인이 좋아하는 순록 고기, 청어, 가재를 사 와 만들어보지만, 오니기리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 사치에가 번뜩 떠올린 것은 일식이 아닌 시나몬 롤이다. 계피 향이 강하기 때문에 시나몬 롤은 다른 빵보다 더 후각을 자극한다. 구경만 하던 사람들은 그 향에 홀린 듯 들어와 따뜻한 커피와 시나몬 롤을 주문한다. 사람들이 들어와 있으니 다른 현지인들도 들어와 일본 가정식도 주문한다.


카모메 식당의 메뉴 중에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 많다. 그중 연어구이가 인기가 제일 많다. 사치에가 핀란드에서 가게를 열기로 한 이유가 연어를 자주 먹는 것이 일본과 비슷해서였다. 이렇게 문화가 달라도 비슷한 음식들이 있는데, 특히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구이를 한다면 그 음식 맛은 같겠지.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이 영화는 요즘 같은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려 사는 방법을 따뜻한 시각으로 제시한다.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처음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공통의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것을 시도한다. 이후에 새로운 것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완전 다른 문화도 받아들이고 즐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비판하며 보기만 했던 아주머니 삼인방도 시나몬 롤을 먹으러 들어오고, 나중에는 일식도 즐기게 되었으니.


이 영화에서 사실 음식보다 먼저 공유하는 문화는 만화영화다. 카모메 식당의 첫 손님 토미가 갓챠맨(독수리 오 형제) 노래 가사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사치에는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점에서 미도리에게 노래 가사를 물어보는데, 일본인이어서 물어봤다기보다 그녀가 무민(핀란드의 국민 캐릭터)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만화 주제가를 알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이후에도 미도리는 무민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의 특징을 사치에에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무민 시리즈는 원래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그림책이었는데, 만화로 제작되어 히트 쳤고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역시 인기가 많다. 내 조카들도 좋아해서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도 함께 갔었다)


음식과 함께 언어도 공유한다.

일본문화 오타쿠인 토미는 자기의 이름을 일본 한자로 써달라고 한다. 이것은 나도 자주 경험했던 일이다. 파라과이나 콜롬비아에서 만났던 거의 모든 아이의 이름을 한글로 써줬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쓰인 것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한글 이름을 써달라는 어른들도 무척 많았고.

토미 같은 일본 문화 열성 팬만이 아닌 카모메 식당의 다른 핀란드인들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일본어로 인사도 하게 된다.  


다른 나라의 맛있는 음식. 이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을 함께 나누고 즐겼다면 서로가 반은 마음을 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음식만이 아닌 다른 문화도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달라서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사치에 대사처럼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 날인 오늘,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와인을 곁들여 맛있는 것을 먹으며 보낼 것이다. 낯선 곳에 있어도 상관없다. 그때를 대비해서 쉽게 할 수 있는 맛난 요리 하나쯤 겸비해 놔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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