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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07. 2022

경유는 처음이라

치앙마이를 향한 첫 관문, 중국 경유하기


1월 6일 오후 2시 30분. 중국에 도착을 했다. 치앙마이 가는데 왜 중국에 왔느냐고? 그건 바로 경유를 하기 위해서다. 곧장 치앙마이로 가는 직항이 있다지만, 비싸다. 경유를 하면 시간을 버리는 대신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주머니 사정이 그다지 풍요롭지 않은 탓에, 시간을 버리기로 했다.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경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 서울에서 지하철 환승할 때도 길을 헤매 몇 번 왔다 갔다 한 내가, 버스도 아니고 지하철도 아닌 비행기 환승을 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방금 전, 여권을 두고 올 뻔한 동생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을 했다.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베이징 공항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기로!

 

다른 사람들은 여행할 때 경유하게 되면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 경유지를 구경하곤 한다는데, 그럴 엄두가 생기지 않는다. 경유를 해보지 않았다는 문제와 더불어 변명을 하자면,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건 오후 2시 30분. 치앙마이행 비행기는 오후 5시 40분 출발. 이리저리 수속을 하고 보니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두 시간이다. 솔직히 두 시간 만에 넓디넓은 베이징을 어떻게 구경하겠는가? 베이징 공항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렇게 말했건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넓디넓은 베이징 공항 한가운데엔 동전 노래방도 있고, 각종 기념품을 파는 매장, 커피숍과 음식점들이 널려있건만, 우리의 활동 반경은 좁다. 일단 알고 있는 중국 노래가 없다. 동전 노래방이라면 즐겁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참새들의 멋진 방앗간인데, 중국 말을 하지 못하니, 일단 노래방은 패스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기념품을 파는 매장들. 아이쇼핑은 시간을 때우기 제격이지만, 사실 여기도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아까 말했다시피, 주머니 사정이 풍요롭지 않다. 그 말은 치앙마이에서 살 기념품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이라곤 지금 여기 베이징 공항이 단데, 기념품을 살 이유가 없다. 베이징을 조금이라도 구경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우리는 발자국조차 공항 밖으로 내딛지 않았다. 그러니 기념품도 패스!

 

나머지로 남은 건 커피숍과 음식점.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지 않는 나로선, 중국 음식은 무리다. 하나씩 제외하고 보니 마지막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다. 다행히 저 멀리 KFC가 보인다. 휴 한시름 덜었다. 가서 치킨 먹자며, 서영이와 함께 KFC로 향한다.

 


신나게 치킨을 먹으러 왔지만, 우리는 어째서인지 곧장 주문을 하지 못한다. 영어로 주문을 해야 하는 탓이다. 거창한 영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쨌든 한국어가 아닌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꽤 긴장이 되는 일. 이 첫 시작을 서영이에게 맡기고자 한다(내가 못해서 서영이에게 맡기는 건 절대! 아니다). 앞으로 치앙마이에 가면 조금의 태국어와 영어를 많이 사용하게 될 텐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서서 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서영이에게 치킨 반 마리 세트 주문하기 미션을 주었다!

 

“언니 그냥 언니가 하면 안 되나? 나 잘 못하겠음”

“아니다 할 수 있다. 그냥 메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디스 원 플리즈 하면 된다. 이건 영어 축에도 안 속하는 거 알제”

“알겠다., 해볼게”

 

열심히 주문 중인 서영이

서영이가 비장하게 주문대로 향한다. 메뉴판을 가리키면 무어라 말하더니, 종업원이 서영이에게 몸을 가까이하고 다시 되묻는다. 몇 번 대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서영이가 오케이를 외치며 환한 얼굴로 나에게 돌아온다. 뿌듯한 표정이다.

 

“주문 성공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엄마한테 말해줘. 내가 첫 주문했다고”

“알겠다 잘하네 김서영. 중국 미아 될 일은 없겠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곧이어 나온 치킨을 해치웠다. 배도 부르겠다, 탑승을 해야 할 게이트 앞에서 수속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근데 웬걸, KFC까지 걸어올 때는 몰랐는데 다시 돌아가려니, 길이 꽤 길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우리는 사이좋게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다. 배도 채웠으니 우리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학생 때 하굣길에 친구들이랑 하던 그것!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한테 짐 몰아주기. 서영이에게 물었다.

 

“어떤데. 둘 다 무거울 필요는 없잖아? 한 사람은 좀 편하게 가자”

“콜. 3판 2선승 하자”

 

싫다고 할 줄 알았더니, 서영이도 어지간히 힘든가보다. 곧바로 가위바위보를 진행했다. 결과는 나의 승리!

 

“아싸 들어라 내 가방”

“하 언니,, 저까지는 내가 들게 저기서 한 판 더 하자. 길이 솔직히 너무 길잖아?”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다”

 

앞 뒤로 가방을 맨 서영이

축 처진 뒷모습을 보이며 서영이가 앞서 나간다. 나의 단호한 말 때문에 쳐진 건지, 가방 무게 때문에 쳐진 건지 알 수 없는 서영이의 뒷모습. 피식 웃으며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보낸다.

 

- 으이그 거기서도 동생 괴롭히나

 

엄마의 답장. 억울하다. 내가 정정당당하게 이긴 건데. 한 번 독재자로 인상이 박히면 변하기 쉽지 않은 건가. 툴툴대며 서영이를 향해 소리친다.

 

“김서영 줘! 그냥 내가 들게”

“오 왜?”

“그냥. 내가 못된 언니 같음”

 

나의 승리가 독재자의 악행으로 변질되기 전에, 서영이에게 준 가방을 다시 들쳐맨다. 잠깐이라도 가벼웠으니 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서영이와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앉아서 사진을 찍고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탑승수속을 해야 할 시간이다.

 

혼자였으면 외롭고 지루했을 경유 시간. 서영이와 함께하니 시간도 금방 흘러가는 기분이다.

게다가 특별히 한 것 없는 경유지였지만, 경유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서영이도 국제 미아가 되지 않았고 밥도 해결했으니 말이다. 이런 나, 주책인가?

 

첫 경유를 자축하며, 이제 진짜 치앙마이행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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