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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Sep 07. 2022

우리 여행 잘 할 수 있겠지?

여행 시작 전부터 여권소동

“없어”

“어? 뭐라고? 다시 한번 찾아봐”

“진짜 없는데 어떡해 언니?”     


시작부터 사고다. 가방을 바꿔 들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서영이의 가방에 미리 여권과 지갑을 넣어뒀는데, 서영이가 ‘가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가방을 바꿔서 메고 온 것이다.

다행히 공항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고 집에서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의 거리는 차로 약 7분 거리. 엄마 찬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김서영이 여권 안 챙겨왔다. 그 가방 좀 들고 와줘”

전화를 끊고, 서영이를 째려봤다. 시작부터 이러다니. 물론 가방이 마음에 안 들 순 있다. 당연히 패션에 있어서 옷과 가방의 조화는 중요하니깐 말이다. 근데 적어도 가방을 바꿨으면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가방의 무게가 안 느껴지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니.. 그 가방에 여권이 들어있을 줄은 몰랐지..”

“야 내가 그거 메라고 챙겨줬으면 안에 들어있는지는 확인하고 바꿔 메야 할 거 아니가”

“언니가 들고 있을 줄 알았어. 미안..”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니 할 말이 없는데, 그 앞의 말이 내 신경을 또 거슬리게 한다. 언니가 들고 있을 줄 알았어? 이거 완전 나한테 책임 전가하는 말 아닌가.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챙겨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여권인데. 참지 못하고 서영이에게 또 말을 했다.     


“야 다른 것도 아니고 여권이다이가. 니 물건은 니가 챙겨야지. 아니면 나한테 물어보던가.”

“그건 맞는데, 다른 건 언니가 챙겨줬잖아. 그래서 당연히 언니가 챙겼을 줄 알았다..”

“그럼 끝까지 내가 챙겨준 대로 있던가. 마지막에 니가 고집부려서 가방 바꿨다이가”

“미안..”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내 탓도 크다. 서영이 말대로 여행을 위한 옷이나, 기타 챙겨야 할 것들을 내가 거의 정해서 챙겨줬다. 게다가 서영이도 취향이 있을 텐데 이게 어울린다며 또 독재자처럼 가방을 정해줬으니깐.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우리들의 관계 개선인데, 또 그걸 잊어버리고 독재자처럼 굴었다. 명령에만 익숙해져 있으면 명령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 독재자처럼 굴 거였으면 집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라고 말해줬어야 했다. 근데 지금 이 순간, 내 잘못을 인정하기가 싫다. 독재자는 원래 자신의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법.     


그렇게 서먹한 채로 몇 분이 지났을까, 저 멀리서 구세주 같은 엄마의 차가 등장했다. 재빠르게 와준 엄마 덕분에 공항버스가 도착하기 직전 여권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엄마가 하는 말. 유난히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찔려서 그런지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싸우지 말고 서영이는 언니 말 잘 듣고 혜미는 서영이 잘 챙기고 잘 다녀와”     


엄마 우리 벌써부터 싸웠어.. 아니 일방적으로 내가 화냈어.. 엄마의 말에 뜨끔해서 서영이를 쳐다보니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미안해진다. 여권도 건네받았겠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도 참 간사하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사과를 할 마음이 생기다니.      


그래, 버스 타기 전에 알아차린 게 어디야 생각하며 슬그머니 서영이에게 말을 건다.     


“공항에서 알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맞제”

“응 그러니깐.. 언니 미안해”

“됐다 해결됐잖아. 내 탓도 있지. 괜히 가방 멋대로 정해가지고”

“앞으론 한 번 더 확인할게”

“나도 미안. 화내서”     


경상도식의 서툴고 무뚝뚝한 사과다. 동생에게 사과를 해 본 적이 있어야 제대로 할 텐데, 이것도 핑계라면 핑계다. 치앙마이에 가게 되면 나는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일단 그것보다도, 아직 우리에겐 중국 경유가 남아있다. 서영이가 공항에서 미아가 될까 봐 두려운 시작이다. 여러모로 걱정이 많아진다.      

우리 여행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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