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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26. 2020

동대문 연대기-9.저가 데님의 나비효과(2)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청바지가 탄생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기 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데님을

좋아하고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갈수록 머나먼 얘기였다. 그래서 옷을 할 수 있는 곳에 가야

했다.  디자인에 완전히 배제되고 난 후, 이직할 곳을 찾을 때 1순위 요건은 샘플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안면이 있던 실장님께서 면접 제의를 하셨다. 실장님은  내가 프로모션에 

있을 때 친분이 있던 원단 사장님께서 소개해 준 분이었다. 시장에 아는 사람이 없는 내게 인맥

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만남을 연결해 주셨다. 한번 뵈었지만 가끔 메신저를 통해 옷에 대한 

궁금증을 여쭤보는 등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퇴사 후 면접을 보러 간 회사는 듣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사무실과 창고를 포함하고도 

아래층에 별도의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원에 운동장만 한 정말 대규모의 창

고가 있다. 회사는 동대문 낮 시장에 도매 매장과 함께  지하철 지하상가에 데님 전문 로드숍 

체인점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포함된 본사 근무 인원은 총 6명, 여기에 도매 매장 

직원 2명이 있다. 그리고 로드숍 판매 직원의 수를 합하면 전체가 50명에 육박했다.




사장님께서는 10대 후반부터 속옷 노점을 시작으로 장사에 입문하셨다. 티셔츠에서 바지로 

복종을 바꾸며, 마침내 '청바지'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 떼어다 판 데님으로 로드숍 

체인을 만들고, 몇 년 전부터는 역으로 도매 매장에 진출한 케이스였다.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무일푼에서 법인 의류 업체의 대표가 된 것이다. 경리과장님께서는 한 가지 일화를 말씀해 주

시며, 탄탄한 회사니 월급 밀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얼마 전 세무조사에서 과징금이 

수억 원 나왔다. 그런데 그 얘길 듣자마자 사장님께서, 자존심(?) 상한다며 현금으로 바로 납부

하라고 지시하신 일이었다. 나는 엄청난 금액과 일시 납부에 두 번 놀랐다. 막대한 부를 일궈

준 회사의 청바지가 더 궁금했다.





도매 매장과 로드숍에서 판매하는 것은 저가의 청바지였다. 시장 안에서도 상당히 낮은 단가

의 포지션이었다. 체인점을 빠른 시간 내에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가격'이었다. 남성과 여

성의 청바지를 저렴한 가격의 정찰제에 판매했다. 물가는 상승하지만 이곳의 청바지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SPA 브랜드로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에 대한 인식이 관대한 소비자에겐, 너무도 

매력적인 것이다. 이 요건에 부합하는 데님을 만드는 것이 내가 채용된 이유였다.







회사에서 데님 샘플을 만드는 방식은 한마디로 대량생산이었다. 일반적으로 샘플을 진행

할 때 디자인을 정하고 그에 맞는 원단을  거래처에서 1~2감 받는다.( 여기서 '한 감'은 바

지 한 벌을 만들 수 있는 2 yard 정도를 말한다.)  그런데 이곳은 한 번에 10감 이상을 받아 

만들었다. 많은 양의 샘플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디자인 디테일 없이 동일한 패턴과 핏

(fit), 그 위에 구제와 컬러 변화 만으로 옷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 곳의 메인 공장의 

협조로  가능했다. 봉제 공장은 성남과 인천에 있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접근성이 낮아도 

회사에서 이용한 까닭은 바로 공임이었다.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제일 낮은 가격이었다. 비수

기 없이 꾸준한 수량을 공급하여 박리다매를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완성 공

장까지도 단독으로 전담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공장에 샘플을 요청할 때는 성남은 퀵으로 인

천은 사무실 문밖에 내다 놓으면 사장님께서 직접 저녁에 가져가시고 가져다 놓는 형태였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듯이 샘플을 받는데도 순서가 있다. 일 순위는 사장님, 이 순위가 실장님

이다. 그다음이 나와 같은 일반 디자이너다. 사장님께서는 오랜 판매 경험으로 로드숍에서 잘 

팔리는 데님을 알고 계셨다. 이를 토대로 원하는 느낌을 워싱 처에 전달해서 옷을 만드셨다. 그

런데 사용하지 않고 우선순위로 받아 놓은 생지가 사무실에 쌓였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이 꿔

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전락한 생지 덕분에 샘플을 겨우 진행할 수 있었다.)




샘플 생지를 워싱 후 완성해서 모으면, 피팅 모델을 섭외해 품평회를 시작한다. 사장님과 도매 

매장 매니저님이 로드숍과 도매로 보낼 상품을 선택하고 몇 가지는 중복된다. 그런데 이 품평에

서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앞면만 보고 진행한다는 점이다. 청바지의 중요한 힙. 엉덩이의 뒤 포

켓은 절대 보지 않았다. 아마도 앞판을 보이게 진열하여 판매하는, 방식의 효용성에 따른 결정이

리라.. 못내 아쉬웠지만 회사의 방식을 따랐다.




입사 후 한 달 반이 지났을 무렵, 실장님께서 초반과 다르게 일을 주지 않으셨다. 다 같이 있는 곳에

서 와는 다르게  둘만 있으면 인사도 안 받아 주셨다. 그리고 성남에 있는 봉제 공장에선 내가 요청

한 샘플 생지는 한 달이 지나도록 올 생각을 안 했다. 그나마 인천 공장에서 보내주시는 덕분에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량의 샘플을 원하는 회사 기준에는 턱 없이 모자랐다. 전화나 문자를 통해 수

차례 문의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인천공장은 토요일에 따로 가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당시 하루에 

두 곳을 이동하는 동선이 어려워, 성남 공장이 일하는 토요일에 맞춰 방문할 예정이었다. 혹시나 새로 

온 디자이너인 내가, 공장에 인사도 안 가서 샘플을 안 주시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고민하

다 실장님께 면담 요청을 했다. 면담 시 성남공장에서만 샘플이 안 오는 부분을 얘기했다. 그러자 말

씀 하셨다.




"원래 시장은 싸운 사람하고 사이가 안 좋아요."




 



<  청바지의 파란 맛이 베인 손 >



인천 공장 방문 후 귀가 하려하는데, 사장님께서 지하철역까지 차로 태워다 주신다고 하셨다. 

어차피 완성된 옷을 워싱처 거점인 서울로 가져다 주는 길이라며 미안해 하는 내게 연신 부담 

느낄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30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됐다. 특히 두 자제분을 훌륭히 키워낼 수 있게 돈을 벌게 

해 준 '청바지'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셨다.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장님의 손을 우연히 보

게 됐다. 체격에 비해 두텁고 단단한 굳은살이 많은 울퉁불퉁한 손. 거친 원단과 봉제기계를 수

십 년간 만져온 손.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손톱 밑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는 손. 그것은 청바

지의 파란 맛이 베인 장인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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