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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11. 2020

동대문 연대기-7.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자료출처-구글  >









보고서 제출 기간을 며칠 앞두고 거래처의 샘플 제작이 많아졌다. 제출 기간이 일주일 연장됐다. 

그때 막내 디자이너가 나에게 공장에 같이 가줄  있는지를 물었다원래 각자 가는 거였지만, 

혼자 가는 것이 어려워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20 초반

 젊고 예쁜 외모의 소유자에나와 나이차가 11살이 나기도 해서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출근 후 실장님께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셨다그런데 보고서는 나만 내었다. 막내 

디자이너에게 “너도 어서 내~”라고 말씀하셨지만, 퇴근할 때가 되어도 제출하지 않았고  실장

님도 더는 언급을  하셨다다만 내 것을 살펴보시고 “생각보다 자세히 잘하셨네요.”라며 

찬해 주셨다실장님께서 나를 전과 다르게 생각하시는 게 느껴졌다. 눈에 띄던 차별이 없어졌

다. 모르는 것도 많고 연상이라 대하기 힘든 부하 직원인 내가더뎌도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주

신 것 같았다







며칠 후 작은 사장님께서 나를 사장실로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우리랑 스타일이   맞는 것 같아이번 주까지 하고 정리하기로 하자.” 


나는 담담하게 디자인실로 왔다곧이어 실장님과 막내 디자이너를 함께 부르셨다이에 부장

님께서 나를 노려(?) 보며,” 나도 같이 들어가!” 하고 함께 가셨다아마 내가 사장님 앞에서 

디자인팀에게   좋은 얘길 했다고 짐작하시는 듯했다. 모양새가  오해받기 좋았다잠시 후  

세 분이 나오고나를 일제히 불쌍하게 쳐다봤다. 해고를 통보받은 당사자보다 더 놀란 모습이었다. 




마지막 주는 피자 풍년이었다. 워싱 거래처에서 간식으로 보내주시고, 이틀 뒤엔 작은 사장님

께서 사주셨다. 사장님은 원래 다이어트 때문에 가끔 순댓국을 드시는  말고는, 점심 식사를 

삶은 계란 한 두 개로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배고프다며 식사 후에, 실장님을 통해 

자를 주문하라고 하신 거다. 사장님은 내게 일을 빨리 마치고 들어가라고 하셨다오후 3시쯤 

 마치자 월급을 봉투에 넣어 건네주시며  '수고했다.'라고 말씀하셨다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건물 밖을 나와 걷는데, 실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언니그동안 화내고 소리친 거 미안해요 때문에 어쩔  없었어요

나중에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요제가 알려 줄게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에 다음 직장에 취업하면  인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거래처의 도움으로 공석이 있는 브랜드에 면접을 보고 바로 취업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여느 때와 같이 패턴을 픽업하러 왔다. 그런데 수정사항이 생겨 30분을 기다

려야 했다. 그 여유시간에 전 직장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근거리라 왕복으로 다녀와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귤 한 상자와 빵을 사서 빠르게 걸었다. 회사엔 실장님과 막내 디자

이너가 있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서둘러 패턴실로 향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오후, 패턴 실로 향하는 신당동 도보에서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 직장의 두 분의 사장님께서 내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인사를 드

렸다. 나는  분께 회사에서 배운 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배운 게 정말 많았다 이후 우연히 마주친 적은 없었다그래서  신기했다. 



이제껏 살아오며 해고 통보를 받은 최초의 회사. 하지만 기쁘게 나왔다스스로 데님 샘플을 

처음   있던 곳이었다머릿속에 이론으로 잡고 있던 워싱 지시를 했고, 청바지의 생산

과정을 제대로   있었다 모든 과정을 겪고 해고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아직 주변에서 나보다  극적인 해고를 받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편의 영화 

았다. 장르를 말하자면 희극이고제목은 너무나 유명한 영화에서 잠시 빌려와야겠다.  


'이보다  좋을  없다.'






<  피자 X 피자  >


내 극적인 해고의 순간에 함께 했던 두판의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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