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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20. 2020

동대문 연대기- 8.저가 데님의 나비 효과(1)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거래처의 소개로 일하게 된 새 직장은 내수용 중저가 데님과 해외 바이어를 타깃으로  밤 시장 도

매를 함께 하는 곳이었다. 면접 당시 사장님께서는 봉제 공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10년 넘게 거

래 해 오는 두 곳의 메인 공장이 있는데, 가끔 디자이너들이 일감을 준다는 의식에 사로 잡혀 거만

하게 행동하는 것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너는 내가 알려 주는 데로 받아 적기만 하면 돼. 이전에 있던 얘들도 다 그랬어."  



생지 상태의 데님을 체크하러 간 내게, 한 곳의 봉제 공장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이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청바지를 만드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지만, 실제 사이즈를 속여서 서류에 기재

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샘플의 워싱 전후 사이즈는  대량 생산의 토대가 된다. 더구나 회사는 이 데이터를 매우 중요히 여기는 

곳이었다. 당시 저가 인터넷 쇼핑몰 업체의 바지를 생산할 때 특히 사이즈 변동이 심했다. 그래서 디자

인실에서는 이 부분을 안정시키고자 생산 시 모든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었다. 공장에 와보니 오차 범

위를 넘겨 잘못된 부분이 대다수 발생 됐다. 사이즈 체크 후 잘못된 부분을  말씀 드리면 자동적으로 

들려오는 말이 있다.



" 어차피 워싱에서 다 맞추니까 상관없어. 너 지금 백화점 바지 만드냐?!"



워싱에서 보완은 절대적이지 않다. 건조할 때 옷 감의 수축으로  사이즈를 어느 정도 작게 할 수 있다.

또는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차 범위를 넘게 크거나 혹은 더 작게 만들어진 옷은 사고로 가는 지름

길이다. 하지만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너무  낮은 단가의 

청바지를 생산하려다 보니 야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패스트패션과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해가 갈수록 저가 옷에 대한 열망을 가진 소비자들이 늘

어 났다. 이를 타깃으로 하는 쇼핑몰 대부분이 동대문의 도매 업체를 통해 사입을 하거나 자체 제작에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이 생산단가다.  바이어가 원하는 저렴한 가격을 만들기 위해 원단과 

봉제, 워싱 등의 공정에서 출혈이 생긴다. 특히 원단을 정석으로 만들 때 거치는 단계가 있다. 그러나 

저가 원단을 생산하기 위해 몇 가지 작업을 빼고 단가를 낮추거나 저렴한 원료를 사용한다. 이러한 원

단은 봉제와 워싱에서 여러 변수로 작용한다.  단가 때문에 좋은 원단을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은 고질적

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 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저가 데님의 출현은 예기치 못 한 생산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장 

사장님께서 일러주는 데로 잘못된 사이즈를 서류에 기재 할 순 없었다.







저가 데님의 유행에  편승한 시장의 흐름을, 부실한 원단의 질적 문제로만 돌릴 순 없다. 청바지를 봉제 

할 때 공장에서도 가격 대비 퀄리티, 즉 공임에 맞는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단가에 따라 더 신경 쓰고 꼼

꼼히 작업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저가 청바지의 경우 생산 단가의 압박으로 공임이 해가 갈수록 

박하다. 불경기 속에서도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공장 사장님께 전해 들은 공임은 10년 전

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더 놀랐던 것은 직기나 다이마루 공장의 공임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가격이라는 사실이다. 원단의 무게로 인해 노동의 강도가 높은 편인데 반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충분

히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부분이 데님을 만들 때도 반영되어 봉제 실수가 자주 발생

하고 있었다. 이 가격에  '백화점 바지' 만들듯 원하냐는 공장의 볼멘소리는 서글픈 항변인 셈이었다.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잘못된 부분을 들어줄 수도 없고,  상부에 말씀 드릴 수도 없었다. 고민

하다 얼마 전 퇴사하신 실장님께 조언을 구했다. 실장님께서는 절대 공장 사장님이 알려주는 사이즈

를 기재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대신 무작위로 확인하는 옷의  양을 늘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어

절 땐 전량의 치수를 쟀다. 덕분에 워싱 전 봉제를 뜯어 수정할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패턴실 외근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이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장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나는 요즘 공장이 재단 수량이 적어 일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 타이트한 기준으로 생지를 체크하니 

힘들어 하신다고 말씀드렸다. 생산현장과 디자인실을 절충 할 조금 유연한 기준 적용이 필요했다. 이

것은 공장의 잘못된 요구를 말씀 드릴 수 없는 나의 에두른 표출이기도 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당시 며칠 동안 아예 공장에 재단이 없던 날이 많았다.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공동 오너이자 디자

인을 책임지시던 이사님께 재단 수량은 민감한 문제였다. 이걸 디자이너인 내 입에서 듣게 되자 격노

하셨다. 재단 수량이 이사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알고, 경솔한 언행을 사과드렸다. 그러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삼자대면을 하자고 하셨다. 패턴실을 빨리 다녀오고 해당 공장으로 오라고 하셨다. 최근에 일을 안 준 공

장은 한 곳, 재단 수량에 불만을 가진 공장이 어딘지 명확했다. 게다가 내게 이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공장

도 동일한 곳이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사실대로 속 사정을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패턴실 픽업을 

마치고 복귀하려고 하는데 완성 공장에서 연락이 왔다. 흑 니켈 캔톤이 부자재 담당처에서 공급이 안된다

고 했다. 오늘 반드시 출고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미리 모자라지 않게 발주했었다. 그런데  캔톤을 생산하

는 공장에 원자재 수급이 안 돼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급히 주변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완성 공장 사장

님께서 아는 업체에 부탁해 캔톤을 공수하고  출고할 수 있었다.





일이 해결된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복귀했다. 원래 봉제 공장으로 가야 했으나 사고 수습으로 시간이

지체되어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공장 사장님께서 사무실을 방문하고 돌아가신 직후였다. 이사님께

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출근시간 더 앞당겨서 나와, 네가 서류 정리 다 해 놔야겠다. 그래야 나랑 실장님이 디자인에

전념하지. 우리랑 계속 일하고 싶으면 너 행동에 주의해야 할 거야."




사실상 디자인실에서의 완전한 제외를 의미했다. 얼마 전 공석이었던 실장님 자리가 채워졌다. 부진

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사님과 새로 부임하신 실장님께서는 디자인에 전념하시고, 잡무를 내게 더 

분배하신다는 거였다. 입사해서 한 번도 샘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배제됐다. 충격

이 커서 말도 안 나왔다. 공장에서 내게 요구했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말할 시기가 지

나 있었다. 기다리면 데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기대마저 박탈됐다.  옷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4주의 정리 기간을 갖고 나는 퇴사했다.








<  개운죽의 뿌리 내림  >


이전에 퇴사하신 실장님의 책상에는 개운죽이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수경식물인 

개운죽의 잎사귀를 뜯어 담가 놓았을 뿐이다. 얼마 후 실처럼 얇고 가는 잔뿌리가 돋아 났다. 

나는 가끔 물을 갈아 주었다. 그때마다 더 풍성해진 새순과 잎사귀 그리고 뿌리가 더 굵게 성

장 했다. 수돗물 하나에 기대어 혼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 애 앞에서 나는 더 없이 초라

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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