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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08. 2020

동대문 연대기-6.네모난 틀에 낀
둥근 돌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워싱 공장 견학 전 면접 봤던 곳에 출근하게 되었다. 이른바 낮 시장이라 불리는 내수용 중저가 데

님을 만드는 곳이었다. 디자인 사무실과  창고가 함께 붙어있는 형태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동대문 브랜드의 구조 중 하나다.) 큰형과  작은형이라 불리는 두 분의 사장님과 경리

업무 및 창고 담당의 부장님, 디자인 실장님과 디자이너 한 명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패턴 실장

님의 소개로 중간 위치의 서열(?)의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그러나 내 나이가 문제였다.  디자인 실장

님 보다 6살 연상. 회사는 사장님의 호칭을 형 또는 오빠로, 실장님을 언니로 부르는 자유로운 분위기

였지만, 나로 인해  어정쩡한 분위기가 된 것이다. 제일 어린 막내 디자이너는 내가 출근하면서  입사

후 처음으로 사내에서 직함을 부르게 되었다. 


" 언니가 왔으니 너 오늘부터 실장님이라고 불러."


이것은 실장님의 나에 대한 배려였다.




회사는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작업지시서를 사용해서  내겐 익숙한 형태였다. 브랜드 론칭

때부터의 작업지시서와 생산 스케줄, 그리고 발주의 현황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고 있었다. 프로

모션에 있을 때는 생산팀이 별도로 있고, 나는 디자인팀 소속이라 접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

데 이곳은 옷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곳이었다.     







"앞으로 둘이 서로 잡아먹어야 해."라는 실장님의 말씀 한마디에 회사 안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시장의 생산을 겪어보지 않아 룰을 새로 배워야 했던 나와, 먼저 들어온 디자이너를 경쟁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먼저 들어온 막내 디자이너는 행동을 달리했다. 나와 나이차는 11살. 단둘이 있을 때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가 달랐다. 억울한 오해를 받는 일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것을 고자질하듯이 실장님께 일일이 보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이것이 큰 사장님 눈에 

보였는지,  모두가 있는 앞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장님과 실장님 

눈에는,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는 상황으로 인식 하게 한 것이다. 두 분의 사장님은 사

무실에  회의와 재단 지시를 하러 점심때 잠깐만 나오셨기에,  그 이외의  근무 시간은 내게 살얼음판과 

같았다.






<  이미지 출처- 포토AC  >




나는  네모난 틀에 낀 둥근돌이었다.  

애초에 뚜렷한 윤각을 가진 것에 상반되는 또 하나의 물체가 들어앉으려는 형국이었다. 유연한

점토처럼  구겨 넣어 맞춰질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에 형질이 매우 강해서  다른 형태의 물질이

들어왔을 때의  위화감.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나중에 들어온 자로서의 내 노력이

먼저였다. 그런데 정해진 방식과 룰을 배워 나갈수록 미흡함은 커져갔다. 배타적인 분위기로 속

에 어느 행동하나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도 아니었으며, 어울려

술자리를 자주 갖는 사내 분위기 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재미없고 나이 많은  거슬

리는 존재였다.






패턴 픽업을 하면 확인한 후, 봉투에  날짜와 담당자 이름을 적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잘

잘못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한 번은 메인 생산에서 사고가 났다.

메인으로 확정되면  샘플 패턴에서 변경된 사항이 반영되어 그레이딩으로 넘어간다. 그레이딩은

대량 생산을 위해 표준 치수의 본을 단계별로 늘려가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마지막 단계에 사

용하는 패턴이다. 그런데 축 계산이 잘못되어 패턴에 반영되었다. 원래 의도보다 작게 만들어진 옷

은 워싱 후 건조 과정에서 더 심하게 작아졌다. 워싱 공장에서 이 사고에 대한 얘기를 실장님께 전달

했다. 막내 디자이너를 시켜 누구의 잘못인지 살펴보도록 하셨다. 말은 '누구'라는 인칭 대명사였지

만, 실장님은 책상에 앉아 팔짱을 끼시고 나를 쳐다보셨다. 막내 디자이너는 그 옆에서 열심히 파일을 

넘기며 사고 난 옷의 작업지시서를 찾았다. 이미 내 잘못으로 확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막내 디자이너가 한 것이었다. 실장님께서는 조용히 주의를 주시고 막내디자이너는 작업지시서를 

수정했다.



두 사람이 나를 의심했던 것은, 이전에 내가 샘플 패턴을 확인할  했던 실수 때문이었다. 같은 

이름의 원단에 청색과 검은색으로 나뉘는  패턴을 검사하며 실수로 인치 계산을 바꿔서 기재

 것이다. 하지만 이날 이후 내가 확인하는 모든 샘플과 메인 패턴의  사이즈 및  계산 내용을

메모하며 이중 체크 했다. 덕분에 컨펌 받기  내가  실수를 자가 검열할  있었다.



실장님은 자기 사람을 매우 아끼는 분이었다. 막내 디자이너가 샘플 패턴을 맡길 , 사이즈 스펙

   기재해서 패턴이 잘못 나왔다. 건당 지불하는 패턴 가격이 늘어나도 주의를 한번 주고,

 보고하지 않았다. 본인의 직위에서 덮고 해결할 수 있는 허물은 감싸고 가셨다. 나를 그렇게 대해

주진 않으셨지만,  모습이 부럽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  봉제 공장에서  시다(보조) 일을 도우며 이전에 알 수 없던 옷의 봉제 과정을 알게 되었다.   >                                 




종합 시장 외근을 다녀와 복귀한 오후. 실장님께서 미션을 내주셨다. 거래처인 봉제 공장에 

가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정한 날짜까지 보고서를 제출하

라고 하셨다. 막내 디자이너와 나에게 옷의 합복 과정을 알게 해 주시려는 거였다. 이번엔 나

를 제외하지 않아 고마웠다. 그 얘길 들은 주 토요일은 마침 공장이 일을 하는 날이었다. 전후 

사정을 얘기해서 방문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시다(보조)  일을 도우며 합복 순서를 볼수 있었

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장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했고,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현장에서 일하시는 직원분들이 청바지의 구조를 이해하는 부분이 놀랍고 존

경스러웠다. 하루 아침에 다가설 수 없는 봉제 실력이 바탕이 연륜이고 실력이었다.  




이날 방문을 계기로 나는 한 동안 공장이 일하는 토요일마다 시다 일을 도우러 나갔다. 일 하

시는데 방해가  법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해 주셨다.

일을 하다가도 남는 재봉틀에 앉아 주머니 감을 박아 보게도  주셨다. 원래 시다의 본분을 

생각하면 재봉틀에 앉을  없다. 정말 특별한 배려였다. 그리고 토요일 점심은 지정된 식당

에서 항상 제육볶음과 상추가 제공됐다. 너무 맛있어서 남겨본 적이 없다. 나 때문은 아니었

지만 갈 때마다 고기반찬을 해 주셔서  토요일이 더 기다려졌다. 맛있는 점심과 좋은 사람들.

떠올려 보면 동대문 생활을 하며 만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  커피는 모카골드 >


봉제공장 토요일 점심시간. 식사 후 정수기 앞에 모여 종이컵과 샛노란 커피스틱 한 봉지를

집어 든다. 커피믹스에 뜨거운 물을 붓고 포장비닐을 스푼 삼아 휘휘 저어 주면 달달한 커피

가 완성된다. 한 모금씩 입안으로 넘길 때마다 피로가 풀린다. 익히 알고 있는 맛이지만, 특히

일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먹는 그 순간에 느낀다. 인스턴트에서 맛볼 수 없는 풍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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