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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27. 2020

동대문 연대기-10.저가 데님의 나비효과(3)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공장과 싸운 적이 없었다. 다만 공장 사장님께서 실장님이 지시하신 재단 수량을 못 보고, 내게

재단 없는데 무슨 일을 하냐며 따지신 적이 있었다. 뒤늦게 들어간 재단 스케줄 때문에 오해 하

신 거였다. 무슨 사건이 있을 만한 걸 생각해도 이것이 전부였다. 그건 싸움이 아니라고 얘기했

다.



"업무에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오라고 했다고 나가길 망설이는 거라면 그럴 것 없어요.

언니가 시장 처음 입사한 곳 ~이죠? 거기에서 지금까지 본인에게 맞는 회사로 자주 이동했잖

아요. 언니는 그런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지금 나이가 많아서 고민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

어요. 막내는 남자라 뽑는 곳도  없는데 그래도 언니는 나가면 들어갈 곳은 있을 거예요."




실장님은 내게 자진 퇴사를 유도하고 계셨다. 그동안 내가 왜 회사를 이동했는지,  고뇌와 사유를

다 알고 계신 분이었다. 시장에서 터놓고 말할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새 이

것을 내 허물이라고 하셨다. 나는 회사에 대한 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리고

더 노력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성남 공장에서는 원단을 보내도 샘플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막내디자이너의 샘플은 보내주셔도 내 것은 오지 않았다. 실장님의 냉담함과 업무 배제가

계속됐다. 다른사람 앞에서는 친절하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황을 알리 없었다.







입사 전 한 곳의 면접을 더 봤었다. 급여가 15만 원 더 높았지만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데님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잘 아시는 실장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면접 후 꼭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별도의 메시지도 주셨었다. 여기에선 제약 없이 청바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다니.. 정말 생각지 못 한 문제였다. 점점 회사 상황

은 극에 달했고, 하루는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흐

른 뒤 친분이 있던 원단 사장님께 듣게 되었다.



"너 회사에서 소리 질렀다며? 분노조절장애라며?"




나는 별다른 얘기 없이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비명을 질렀던 빈 화장실은 2층에 있었고 소리가

커서 당시 퇴근하려 회사 밖으로 나가셨던 실장님께도 들렸으리라. 원단 회사 부장님은 실장님과

막역한 사이였다. 그래서 이 같은 상황을 전달했고 사장님께도 말한 것이다.



면담 때 실장님께서 유도하신 자진 퇴사를 했다면,  분노조절장애로 낙인찍히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데님을 할 곳이 필요했다.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화

장실에서 비명을 질렀다는 돌발 행동은 온전히 내 실수다. 얼마 후 사장님께서 중대 발표를 하셨다.

도매 매장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내 디자이너를 해고 한다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도매 매장의 철수는 거래처 사이에서도 이슈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며칠 안 가서

매장 운영을 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시금 도매 매장 철수를 확정하셨다. 이 결정의 가장

큰 요인은 매니저님의 퇴사로 기인한 문제였다. 매니저님은 사장님의 로드숍 직원으로 시작

하신 분이다. 어린 나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도매를 총괄하고 계셨다. 그런데 개인 사정으

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사장님께서는 이분이 아니면 도매를 맡길 사람은 없다며, 그럴

바엔  접는다는 것이다. 비싼 도매 매장 임대료에 비해 매출도 저조한 요즘, 주력  사업인 데님

로드숍 체인만 집중할 거라고 하셨다.




도매  사업 철수에 이어, 막내 디자이너의 해고 또한 한 번의 번복을 거쳤다. 그리고 최종적으

로 해고 통보를 확정했다. 얼마 후 실장님께서 잠시 나를 따로 보자고 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했겠지만 이제 도매도 없으니 나눠줄 일이 없어요.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두 사람 없이도 나 혼자 충분히 가능한 업무예요. 언니가 특별히 인수인계할 부분이 없으니

지금 당장 그만둬도 상관없어요. 원한다면 사장님께 얘기해서 한 달 정도는 더 일하게 해 줄

수는 있어요."




이것은 내 생애 첫 번째 권고사직이었고, 동대문에서 두 번째 해고였다. 내게 왜 자진 퇴사를

유도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실장님께선 도매 철수를 미리 알고 계셨다. 인건비를 줄

이기 위해 디자이너를 내보내야 했다. 사장님의 결정 이전에 내가 나간다면 아끼던 막내 디자

이너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까지 감원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해고의 

온도차는 극명했다. 처음 막내 디자이너의 해고 소식을 들으신 실장님께선 눈물을 훔치며 우

셨다. 그리고 본인이 어디든 넣어줄 거라고. 그러나 내게 해고 통보를 하실 땐 무표정. 나는 그

 앞에서 어깨가 떨릴 정도로 펑펑 울었다.




바로 나가길 원하는 실장님께 다음 달까지 일 하겠다고 말씀드릴 수 없었다. 통보를 받은 이달

까지 마무리 하겠다고 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을 드렸다. 있는 동안 샘플을 마음껏 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데 성남 공장에서 생지를 보내주지 않으니 도와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실장님

이름으로 내 것을 함께 보내서 받아 쓰라고 하셨다. 마침 새로운 원단을 테스트해야 해서 실장님

과 원단이 겹치는 게 많았다. 종이에 원단과 패턴 번호를 적었다. 상단에는 똑같이 '실장님 샘플'

이라고 기재했다. 하지만 구분을 해야 하기에 실장님은 검은색, 내 것은 파란색 매직으로 적었다.

검은색 매직 샘플은 3일 안에 도착했다. 하지만 파란색으로  보낸 내 샘플은 5주가 지난,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두 타입의 샘플을 퀵에 싸서 보내는 그날, 사무실엔 나와 실장님

뿐 있었다. 나는 그제야  성남에서  내 샘플만이 안 오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  나부끼듯 쌓였다. >



대량으로 만든 샘플에서 메인(main) 생산의 선택을 받지 못한 데님은 로드숍에 최저가

상품 매대로 보내졌다. 마치 종잇장이 나부끼듯 참 가볍게도 켜켜이 창고에 쌓였다. 질

보다 양이고 완성도보다 스피드를 추구해야 하는 청바지였다. 그 누군가 말했던 '예쁜

쓰레기'를 나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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