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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28. 2020

동대문 연대기-11.저가 데님의 나비효과(최종)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권고사직을 통보받은 것은 설날을 보내고 온 다음이었다. 연휴에 명동에서 로드숍 매장에 선보일 숏

팬츠와 원피스 샘플을 구매했다. 퇴사를 확정 짓고 기운이 좀 빠지긴 했지만, 마지막 달은 옷을 마음

것 해도 좋다고 하셨으니 아주 나쁜 건 아니었다.  





 워싱 공장 샘플러분에게 연락이 왔다. 내게 물어볼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퇴근하면 물어

봐야 한다고 말을 하지 않으셨다. 급한 일이 아닌 듯싶어 별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늦게 야근을 마치

고 집에 도착할 무렵 메시지가 왔다. 빙빙 돌려 조심스럽게 물으시는걸 단번에 알아듣고 대답했다.


"혹시 저 해고 통보받은 거 물어보시는 건가요? 영업 이사님께 들으셨나 봐요."


직선적인 내 대답에  놀라다. 해고를 통보받고 평소랑 다름없이 일하는 게 궁금해서 연락 하신 

라고 했다. 이런 내 사정을 알고 계셔서 인지, 인천 봉제 공장과 워싱 처의 배려로 마지막 날 데님 원

피스를 완성하고 나올 수 있었다.







 퇴사 날짜가 확정되고  눈에 띄게 디자인실 업무가 줄었다. 회사 차를 끌고서 밀리오레 등지에 있는

소규모 데님 매장에 배달을 다녔다. 막내 디자이너가 잠시 주차로 대기하면, 내가 거래처에 청바지

를 납품하고 주차권을 받아 내려오는 형태였다.


우리는 더 이상 회사의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하루는 점심때 다 같이 사장님께서 좋아하시는 순댓국을 먹기 위해 나왔다. 잠시 신호등 앞에 

서 있던 몇십 초에, 우리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사장님의 말씀을 또렷이 기억한다.


"한 사람당 7천원에 여섯명이니, 하루 밥값만 42,000원이네? 아유 징그러~!"







 사장님은 로드숍 판매 매장 직원들과 달리 디자이너를 하찮게 생각하셨다. 판매 직원은 하루 

종일 서서 사람 비위를 맞춰가며 청바지를 팔지만, 그에 비해 디자이너는 하는 일이 없어 보였

던 것이다.



 회사는 국내 생산 이외에도 프로모션을 거쳐 중국에 별도의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었다. 오래전 

중국에 우리의 봉제와 워싱 기술자가 대거 진출했다. 이로 인해 지금은 이미 품질의 상향 평준화

를 이룬 실정이다. 더 이상 날림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국내 생산은 공장 핸들링을 컨트롤

할 실장님이 계시고, 디자인이 가미된 옷이 필요하면 저가 데님 업체에서 일부를 떼어 다 파는 형

식이었다. 동대문은 옷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말 한마디에 근사한 데님을 만들어서 보여 주는 곳

이었다. 그만큼 훌륭한 인프라가 차고 넘치는곳이다. 이러한 까닭에 나와 막내 디자이너는 사장

님께 점심값을 축내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2월 말이 마지막 근무 예정이었지만, 일이 없던 터라 하루 일찍 마무리하자고 하셨다. 그렇게 

마지막 출근을 하고 점심은 회사 근처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사장님을 포함해서 4명이 앉은 곳

엔 3인분. 내가 포함되어 앉은 3명엔 2인분의 삼겹살이 왔다. 우리 테이블엔 창고에서 근무하시

는 주임님과 직원한 분이 있었다. 주임님과 나는 삼겹살 두 점을 집어먹고, 양이 모자라 보이는 

직원분에게 고기를 양보했다. 마지막 점심을 먹고 사무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사장님께서 말

씀하셨다.


"미안하긴 하지만, 회사 대청소 좀 하고 나가야겠어. 안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


이 말이 어이없던지  막내 디자이너가 말했다.


"그럼, 그렇지. 왜 삼겹살 사주나 했네. 괜히 먹었어."







 사장님의 지시와 동시에 사무실과 창고를 뒤엎는 작업을 했다. 창고에 있던 미싱과 선반을 

사무실로 가져왔다. 이어서 새로운 대형 철재 선반을 조립했다. 실장님 혼자서 일하실 수 있

는 형태의 레이아웃을 만들었다. 옷과 남는 원단도 다 치웠다. 얼굴에 검은 먼지를 묻혀 가며 

정리를 하는데,  원단을 갖고 찾아온 거래처에서 날 보며 말했다.


"아이고~ 웃고 계시네..."



저녁 7시 넘어, 대청소가  끝났다. 다음날은 죽은 듯이 한 잠자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며 회사를

떠났다.






<  국밥 한 그릇 >


돼지의 뼈와 살을 푹 과서 우린 뽀얀 국물에 순대와 부속 고기가 아낌없이 들어있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내용물을 빼거나 더 할 수 있고, 공깃밥과 깍두기까지 있으니 한 그릇 먹으면 정말 든든하다. 그

야말로 가성비가 넘쳐 흐른다. 돼지 한 마리가 국밥이 되어 수십 명의 뱃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듯이, 디

자이너인 내게도 그런 역량을 회사는 원했다. 그러나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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