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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ul 31. 2020

동대문 연대기-13.그들만의 리그(2)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월등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워싱으로 인해, 다른 생산공정에서 지체되면 타 회사보다 큰 부담을

로 작용했다. 패턴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부분이었다.  회사가 중요시 여기는 손맛은 패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손으로 뜬 패턴만 이용했다. 요즘 대부분의 패턴 사무실에서 CAD를 이용한 패턴과 그레이딩을 사

용하고 있었다. CAD는 패턴 사이즈를 데이터화 한다. 수정 사항이 생기면 부분적으로 고쳐 출력할

수 있고, 그레이딩까지 용이하다. 생산성 높고 간편한 캐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공

교롭게도 기존에 손 패턴을 떠주던 곳에서 더는 못 하겠다며 거부했다. 실장님께서 지인을 통해 새로

운 패턴실을 알아보셨다.







브랜드의 주 타깃층은 홍콩과 중국 등의 해외 바이어였다. 이들이 추구하는 데님은 장식이나 디테일

이 많이 들어가 화려하다. 통상적으로 디테일이나 디자인이 많이 가미된 옷을 진행할 때  작업지시서

에  기준 사이즈를 준 뒤, 어떤 원단을 사용할지를 정해서 패턴실에 의뢰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패턴

비 절약을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패턴을 이용하여 디자인에 변화를 줘야 했다. 




최근 늘어난 주문을 맞추려 별도의 공장 3곳이 추가되었다. 메인 공장은 답십리. 나머지 공장은 장한평

과 망우리, 면목동에 있었다. 각각의 공장의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신상품은 기존 패턴을 이용해 파생된 

옷이었다.  한 가지 패턴이 2개의 공장에서 동시에 필요한 경우가 생겼다. 새로 섭외한 패턴실에 기존의 

낡은 패턴을 한 부 그대로 복사하고,  바이어가 요청하는 사이즈로  키워 그레이딩을 하기로 했다.  기존 

패턴은 매우 낡고, 원래 패턴 사이즈마저 알지 못했다.  데님의 패턴은 축률을 반영한다. 그래서 회사의 

스타일을 잘 알고 계신 사장님과 실장님의 말씀이 중요했다.  두 분의 지시 사항을 A4용지에 모두 기재

했다. 그리고 실장님께 메모한 종이를 컨펌받아  패턴 실로 향했다.







새로운 패턴실의 상호를 들었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곳은  내가 처음 시장에서 일할 때 알게 된  

패턴실이었다. 오랜만에 패턴 실장님과 안부를 나누고, 의뢰할 패턴을 드리며 메모 사항을 전달

했다. 실장님께서 패턴이 보고 놀라셨다. 패턴에 적힌 날짜가 당시로 딱 10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낡고 종이가 닳아 있어 내 설명과 메모만으로는 어렵다고 하셨다. 회사 실장님과 전화  

통화한 후, 일을 진행하시겠다고 했다. 



패턴이 나왔다. 이전 회사에는 패턴실에서 사이즈가 잘 나왔는지 줄자로 확인 후 가지고 갔다. 

기준 사이즈가 없는 현 회사의 패턴을 내 기준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지시된 사항이 있었

지만, 손상된 원 패턴을 기준으로 보기가 어려웠다. 우선 실장님께 확인을 받아야 했다. 






사장님과 실장님 모두 사무실에 계셨다. 그런데 의뢰한 패턴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왔다. 

내가 메모해서 전달한 내용은 전체 품으로 1 1/2"을, 인심은  1/2" 키우고  XL 사이즈로만  

2부를 그레이딩 해달라는 의뢰였다. 하지만 결과물은 원 패턴의 허리 기준으로만 1 1/2"이 

키워졌고, 그레이딩은 그 기준을 적용해  4단계가 그레이딩 되었다. 원래의 패턴을 그대로 

한부 사이즈별로 복사한 것만이 제대로 나왔다. 분명 메모한 사항을 재차 컨펌받고 패턴실

에 전달해 드렸다. 실장님과 통화 후 작업을 진행하셨기에 여기에 변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말씀드렸다. ( 숫자에  " 표시는 inch를 뜻함.)



"너 지금 내 핑계 대는 거니? 난 그렇게 지시한 적 없어. 이 돈 못 주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해." 


 분명 잘못된 부분이었다. 사장님께서는 그 지시 현장에 같이 있던 분이다. 그런데 실장님의 

 말씀에 아무런  언급을 안 하셨다. 



" 네가  패턴실이 오해하게 메모해서 그런 거야. 가서 새로 맡겨. 거래 계속할 거라고 말하면서 

이번에 잘못 나온 건 그냥 넘기자고 해. 그게 안되면 돈 드려도 절반만 드릴 수 있다고 해. 안 그

러면 네가 곤란해진다고."



손 패턴은 건당 최소 5만 원 정도로 시작한다. 요구 사항에 따라 금액이 올라가는데 이번 건은 

대략적으로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다 거절하는 작업을 받아준 패턴실에, 시간과 

공을 들인 결과물에 대한 값을 내 처지를 말하며 협상을 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받아온 패턴과 메모를 그대로 다시 들고 패턴실에 왔다. 패턴 비를 건당 가격으로 지불하는 형

태라 영수증을 받는다고 말하며 내 돈으로 지불 할 생각이었다. 되돌아온 패던과 메모를 보며 

패턴 실장님이 말씀하셨다.


"역시... 처음에 그게 맞는 거였구나."


초반에 메모한 A4 용지에는 패턴 실장님께서 회사 실장님과 전화하며 메모한 지시 사항의 흔적

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다시 패턴 의뢰를 하며, 이전 작업에 대한 계산을 위해 명세서를 달라고 

말씀드렸다.



" 어차피 이 패턴 사용 못 하잖아. 돈 안 받아도 돼. 걱정하지 마"



음료수를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마치 방금 전 회사 상황을 아시기라도 한 듯, 패턴 실장님은 끝내 

돈을 받지 않으셨다. 이후 패턴 의뢰 시  계산 및 명세서는 회사 실장님께 받으셨다. 그것은 혹시 

모를 곤란 한 사항에  내가 놓이는 것을 막는  패턴 실장님의 배려였다. 







"네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그냥 '네' 하고  넘겨야 할 때가 많을 거야."



00 실장님이 내게 시장 생활의 조언을 하시며 하셨던 말씀이다. 시장은 이제껏 내가 다닌 일반 

회사와는 다르다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이제는 예시를 제시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00 실장님께서 퇴사를 앞두고 계실 때  입사했다. 처음엔 본인의 인수인계를 받을 실장급 

경력자가 뽑힌 줄 알았다고 하셨다.( 내 많은 나이 때문에.) 그러나 늦은 나이에 데님을 시작하고, 

시장 경력이 얼마 안 된 점을 아시고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성심성의껏 알려 주셨다.  일을 잘

하시는 건 물론이고  자신을 가꾸시는 모습도 멋진 분이었다. 그런 00 실장님을 난 매우 좋아했다. 

이전 직장의 권고사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때, 마침 좋은 사수가 있는 곳이라며 현재의 직

장을 적극 추천하셨다.






멘토로 생각하는 00 실장님의 친구인 현 회사의 실장님은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매우 착한 사람

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일해본 적이 없는 00 실장님께서 실상을 아시진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레지오와 청년회 활동을 매주 참석하는 데다가, 시장에 문상 

갈 일이 생기면 자차로 친구들을 픽업해 데려다주곤 한다. 혹시나 새로 구한 봉제 공장이 겹치는 

경우, 친구인 타 회사 실장님께 먼저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 할 만큼 기민한 사람이었다. 바쁜 와

중에도 새벽 기도를 참석하고 출근하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대단하고 멋지다 생각했다. 나 

역시 천주교 신자다. 그래서 평일 아침 출근 준비도 바쁜 시간에 새벽 미사 참석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겐 어둡고 뒤틀린 감정을 쏟아내는 분이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마당발인 00 실장님께 말해, 봉제 공장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라 하시면서도,

그분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하셨다.



"개가 시장에서 제일 말 많은 애야. 얼마나 안 좋은 소리가 많은 줄 아니?! 개가 명품백 받고

거래처 바꿨잖아. 그래서 원래 거래처 망했어!  그 소문 누가 냈는 줄 알아? 그 가방준 회사에

서 낸거야. 00실장 발 못 빼게!"



실장님은 이런 사장님의 말씀에 동조하며 모임의 다른 디자이너의 안 좋은 얘기를 하셨다. 

00 실장님의 sns에 함께한 모임에서 웃고 있는 회사 실장님의 사진이 자주 등장했다. 매우 

친한 친구 사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런 실상을 00 실장님께 전할 순 없었다. 






매주 화요일은 회사 도매 매장에 신상품이 걸리는 날이다. 사무실 퇴근 후 매장으로 오면 대략 저녁

9시. 신상을 진열하고 시장조사를 한다. 늦으면 새벽 12시가 넘어 끝나고 퇴근한다.  신상품의 견본 

샘플뿐만 아니라, 나오시(수선) 한  데님을 함께 가져갈 때도 있다. 




실장님의 차로 이동할 때가 많았다. 평소  도매 매장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셨다.  그러다 

건물과 멀찌감치 떨어진  골목에 주차를 하셔서 주차권을 받을 수 없느냐고 여쭤보았다. 이전 직장

에서 내가 막내 디자이너와 청바지 배달로  밀리오레에서 주차권을 받았던 것을 말씀드렸다. 업무로 

오니까 주차권을 받을 수 있지 안느냐는 말이었다.


"나도 너처럼 교통비 지급 안 되거든." 



짧은 대답이 나왔다. 대부분 시장에서 외근으로 발생하는 교통비에 유류비 내지 교통카드를 제공한다. 

입사 전 교통비 부분을 말씀드렸을 때 그런 건 없다고 하셨다. 대신 급여를 10만 원 더 지급한다고 했다. 

나중에 친구를 통해 알았지만, 밤 시장에서는 주차권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게 끝난 대화였다.



"너는 무슨 분란을 만들려고 그런 말을 한 거니?! 주차권 왜 안 주냐고? 나는 네 실장한테 

매달 충분한 급여를 주고 있어. 그리고 사무실 앞  주차 공간도 내가 달마다 구청에 돈 내면서

무료로 실장 주차하게 해 준거야!"



갑작스러운 사장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전달받으셨는지 모르나 밀리오레 배달 때

를 말씀드리며 오해하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실장님은 사무실 안에 설치된 cctv보다도 더 자세히,

내 일거수 일투족을 사장님께 일일이 보고했다. 내가 한 말을 사실과 다르게 얘기하거나, 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했다고 거짓으로 꾸며 말씀하셨다. 이 일은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이것은 시장

에서 그녀가 살아 남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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