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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Aug 01. 2020

동대문 연대기-14.그들만의 리그(3)

- 나의 데님 로드 (My Denim Road)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






디테일이 많았던 회사의 데님에는 굵은 지퍼나 가죽 이외에도 도토( 금속 단추의 일종)가  종류

별로 다양하게 쓰였다. 워싱전 도토를 작업할 경우 부착된 것이 잘 떨어졌다. 이런 걸 모아서 수

선을 받는다. 도토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다. mm 별로 나와서 작업 시 크기에 맞는 몰드를 사용

하게 된다. 종합시장 외근을 나올 때 도토 수선이 필요한 청바지를 거래처에 맡긴다. 일반 몰드

를 주로 사용하는 A 거래처에, 실수로 특수 몰드를 사용한 B 업체에서 작업한 바지를 꺼냈다. 다

른것에 섞여 들어간 바지였다. 재빨리 다시 챙겨서 나왔다.



"미친년야! 너 나오시(수선)를  거기에 주면 어떡해! 방금 전화 왔잖아! 다른데 거래하냐고!

 정신 나갔어?!"



거래처 사장님은 방금 전 앞에선 "다른 곳 바지가 잘못 왔나 보네."라고 무심하게 말씀하셨지만,

내가 나가고 바로 회사 실장님께 전화 한 것이다. 경쟁 업체에 일감을 빼앗겼으니 기분 나쁘셨을

거라 생각한다. 앞에선 웃어도 뒤에서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곳이 시장이었다.






베이직한 기본 데님을 하다가 회사의 독특한 디자인 스타일을 맞춰 가는 게 어려웠다. 사무실 출근 전

부자재를 픽업해서 출근 후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한다. 컨펌받을 샘플 작업 지서를 준비하고, 리벳

과 캔톤을 일일이 손으로 갈아 낸다. 9mm 랭글러 리벳 한 봉지 2,000개, 17mm 캔톤은 한 봉지에 

1,000개가 들어있다. 이걸 완성 공장에 가지고 갈 때는, 세트인 밑짝도 수량을 맞춰 가져간다. 짐이 

좀 덜 할 때 밑짝을 나눠서 운반하려 했지만, 실장님께서 꼭 세트로 한 번에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한 번에 많을 땐 10봉지를 백팩에 넣었다. 쇠로 만들어 무거웠다. 입사 초반엔 실장님께서 알려 주

며 도와주셨지만, 몇일 뒤엔 모두 혼자 하게 됐다. 동선을 줄이기 위해 그걸 등에 매고 모든 거래처

를 다녔다.나중엔 조금씩 타서 쓰던 시재도 꼼꼼히 잘 관리할 것 같다며 내게 맡기셨다. 실장님께서 

일찍 퇴근하고 차로 지인들을 데려다 함께 문상을 가던 날도, 나는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혼자 남아 

리벳을 갈고 완성 공장에 가져다 주었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새벽 퇴근의 연속이다.







특히 청바지에 들어가는 부자재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2주 후 작업 예정 스케줄인 것도 오늘 안에

미리 끝내라고 말씀하셨다. "갖다 놓고 가."라는 한마디. 그걸 들은 나는 신당동 완성 공장에 캔톤과

리벳 그리고 후 작업용 가죽과  부자재를 가져다 놓는다.


밤 12시 넘어 완성 공장에 있을때, 관계자에게 전화해서 내가 있는지 확인 하신적도 있다.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그분은  "없어." 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수선할 청바지까지 챙기

니 나중엔 그 양과 무게가 너무 많아졌다. 퀵은 회사 시재로 봉제 공장과 거래처 사이에 급히 작업할 옷

이나 부자재를 보낼 때만 쓸 수 있었다. 점점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을 느꼈다. 외근시 교통카드 지급 없이

교통비조로 10만원을 입사할때 주신다고 하셨지만, 잦은 외근과 장거리 이동으로 턱 없이 모자랐다. 돈

이 지출되더라도 사비로 택시를 타고 다녔다.




답십리에서 망우리, 면목동, 신당동...대중교통으로 거래처를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너무 늦다고

재촉하셨다. 그래서 또 택시를 탄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날은 막차 바로 전이나,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밤 12시가 넘어도 전화하셨다. 내게 소리를 지르고 악에 받친 검은 감정을 토해냈다.

분출하는 화산 같던 통화가 끝나면, 카톡 메세지는 이와 상반된 분위기로 점잖게 말씀 하셨다. 마치 누군

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처럼. 다음날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유튜브로 가톨릭 성가를 찾아서 틀어 놓으

셨다. 소름 끼쳤다. 수면시간이 점점 부족해졌다. 작은 실수들이 이어졌다. 새벽에 겨우 잠들다가도 다

에 쥐가 나서 깨기를 반복했다. 나는 퇴사를 말다.






퇴사를 확정하고 한 달간의 인수인계 기간을 말씀드렸다. 사장님께서는 사람이 안 구해졌는데 어떻게

한 달만 하고 나갈 생각을 하냐고 하셨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을 더 하는 것이 최대한이라고 말다.

하지만 그만두는 날짜를 왜 네가 정하냐며 화를 내셨다. 그 이후 나에 대한 비판은 비난으로 바뀌며, 인

신공격이 시작됐다.



"너 왜 뽑은 줄 알아?  00실장이 착하다고 해서 뽑은 거야!  이게 착한거야?!

  너 때문에 젊고 참신한 애들 못 뽑았어! "




'착하다'라는 것은 내 삶을 관통하는 말이다.  나를 걱정하는 오랜 지인은 내게 '착한 여자 콤플렉스'

있다고 했다. 이것은 가족과, 친구, 직장 생활 안에서도 나타났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사업 실패로 부모

님은 이혼하셨다. 초등학교 입학 전 조부모님이 계신 근처로 주거지를 옮겼다. 할머니께서는 집안에 여

자라고는 너 하나이니 아버지와 오빠를 잘 챙겨야 한다고 하셨다. 더불어 항상 바르게 자라야 한다고. 하

지만 이 바르게 가 내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자신 보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양보가 우선되

는 자기희생의 기반에서 '바르게'가 실천된다고 느꼈다. 사장님과 실장님은 내 이런 심리를 잘 용했다.



" 우리 회사엔 너 같이 집안이 부족한 애들이 유난히 많이 거쳐갔어. 너희 실장처럼 안정된 집안에서

자라온 게 아니라  안쓰러워서 내가 더 보듬어야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나간다고?! 나이 든 너

뽑느라 젊은 인재 놓친 거 어떻게 할 건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장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 옆자리 실장님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월급이 적어서 수지 타산에 안 맞는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진짜 모멸감 느껴!

너, 내가 시장에서 영향력이 어떤지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서 그만두고 딴 데 가면 내가 가만 놔둘 것

같니?  나랑 실장이랑 너 시장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그리고 다음달에 월급 30만원 올려 주려고

했는데, 넌 그 기회를 차 버린거야! "




다음달 5일엔 급여를 받고 퇴사하는 날이다. 그런데 어떻게 급여를 올려 준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하

지 않은 이 '수지 타산'이란 말을 꾸민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장 거래처가 본인 기분 

내키는 데로 거칠게 하는 사람이 많았어도, 거짓말로 음해를 하는 성품의 소유자는 없었다. 사장님 말

씀에 내 옆에서 실실  웃고 있던 실장님, 그녀는 이런 말을 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무실은 우리 

세 사람이 전부였다. 사장님은 마치 우리 둘을 앞에 두고 삼자대면하듯 말씀을 하시며, 실장님과 나의 얼

굴을 번갈아 쳐다보셨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들었다. 어차피 퇴사를 앞둔 마당에  모함한 사람의 

행동에 따져서 무엇할까?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모함 받음 것을 소명하지 않는 

나를 더 우습게 봤다. 거래처의 잘못을 내게 덮어 씌우고, 음해의 강도를 높였다.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다. 몸이 떨렸다. 나중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얼마 전 캔톤과 리벳을 갈아 백팩

안에 유난히 많이 담고 완성 공장에 갔다.  너무 무거웠지만, 택시비로 지출이 많은 상태라 가방을 메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오후 1시, 물건이든 백팩을 내릴때였다.비어있는 공장 안에서 '악' 소리의 비명이 나

도 모르게 나왔다. 허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크게 삐끗한 것 같아 약국에서 근육 이완제와 진통제를 사서

먹고 파스를 붙였다. 허리에 있던 통증은 점점 다리로 내려왔다. 사무실에서 사장님과 회의가 있었다. 서서 

들었던 질타에 다리가 떨려와  아파서 앉겠다고 말했다.



" 아프다고?! 연기하지 마!  나는 시장에서 별의별 사람, 디자이너 다 겪어 봤어. 누굴 속이려고!"



사장님과 실장님이 말하는 시장은, 내가 알 던 세상과 너무도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들만의 리그에

불시착해서 떠도는 하찮고 같잖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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