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쓰지 않는 이력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by mimi

워홀을 준비하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는 캐나다의 직장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한국 특유의 수직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벗어나, 다른 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고 사람을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좋은 점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어학원에서 진행하는 이력서 준비 프로그램에 신청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이력서를 영어로 번역해 가져갔다.
당시에는 열정이 앞서 있었고, 나를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 이력서를 더 보완했다.
하지만 이력서를 본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너무 길어요. 한 장으로 요약해야 해요. 나머지는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으면 그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때부터 캐나다의 이력서와 취업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한국과 달리 캐나다의 이력서는 한 장으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경력 기술이나 자기소개 역시 간결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이력서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한 장이라는 기준이 있어 심리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정해진 질문이나 글자 수 제한이 없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 방식은 지원자뿐 아니라 수많은 이력서를 검토해야 하는 담당자의 부담도 줄여줄 것이라 느껴졌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이력서에 나이나 사진을 기재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이력서를 통해 판단해야 할 것은 오직 이 사람이 해당 직무에 적합한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나이와 사진은 직무 수행과 무관하며,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차별로 간주된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사진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이력서 사진을 잘 찍고 보정해주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곤 했다.
또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경력의 수준이나 직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
그 때문에 다른 분야로의 이동이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상사의 나이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이유로 기회가 제한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을 떠올리면 한국 사회는 나이 중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나이가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어학원에서 만난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야간 경비로 커리어를 시작해, 70대에 가까운 나이에 어학원 교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를 면접한 사람은 20대부터 어학원에서 일해온 더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사람을 뽑을 때 나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면접을 통해 이 사람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는 출신 대학이나 공인 영어 성적 같은 스펙을 중요하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캐나다에서는 학교 이름보다 전공이나 관련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영어 역시 점수보다는 실제로 소통이 가능한지가 중요했다.
면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에 토플이나 토익, 아이엘츠 같은 시험 점수는 이력서에 필요하지 않다.
다만 한국 남성의 경우 군 복무 경험은 책임감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요소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점도 새로웠다.


캐나다에서는 추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을 채용한다.
그래서 네트워크와 평판이 중요하고, 이전 직장에서의 태도와 관계 역시 평가 요소가 된다.
상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며,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의 관계가 더 강조된다.
한국이 학벌이나 출신, 배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면,
캐나다에서는 함께 일하며 드러난 태도와 책임감, 협업 능력이 기준이 된다.
추천 제도는 추천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살아오며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기준을 표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캐나다에서 경험한 이 취업 문화는 나의 사고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준들이 반드시 보편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력서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