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가 사라진 이유
얼마 전,
고객들과 직원들이 함께한 신년회 자리에서
내 또래의 한 남자 고객이 멀리서
갑자기 내게 물었다.
“저기 원장님,
이쯤 나이가 되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
가벼운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었지만
당황스럽게도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사랑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살아오며 의미가 옅어져 버린 단어이기도 했다.
사랑은
너무 많은 말로 설명된다.
반함, 호감, 친밀, 안정, 궁합, 배려,
맞춰감, 지속 가능성.
그 모든 것이 사랑 같기도 하고
그 어떤 것도 사랑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연애를 하고 싶어서 연애를 하기도 하고,
사랑을 하고 싶어서
그걸 사랑이라 믿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 이 감정은
사랑일까.
아니면
내 삶의 어떤 ‘필요’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빌려
느껴지고 있는 걸까.
그 질문 앞에서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보았던 만화,
로봇 태권 V에 등장하던
로봇 ‘메리’.
메리는 전투용 로봇도,
주인공도 아니었다.
다만 인간 곁에서
감정을 배우도록 설계된 존재였다.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이런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떤 걸까?
동그란 걸까?
네모난 걸까?”
어린 마음에도
왠지 슬픈 여운이 이상하게 오래 남은 장면.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그 노래는 질문이었다.
메리는 결국 사라진다.
고장 나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패배해서도 아니다.
메리는
사랑을 믿은 탓에 사라진 게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너무 정확하게 알아버렸기 때문에
사라진다.
사랑은
정체라는 것.
존재를 드러내는 힘이라는 것.
그걸 이해한 순간,
메리는 더 이상
로봇으로 남을 수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메리가 왜 사라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랑은
누군가를 얻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숨길 수 없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위험하다.
시간이 필요하고,
안목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
상대는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있다.
그게 사랑이다.
나는 이것을
‘재귀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한다.
관계 안에서 반응한다.
그 반응을 통해
나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 정체를 안고
다시 사랑한다.
사랑은 반복되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지 않는다.
매번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든다.
⸻
여행을 하며
나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섰다.
사랑은
안정된 형태일까.
아니다.
사랑은 안정이 아니다.
사랑은
살아내는 태도에 가깝다.
조금씩 나를 내어주는 용기,
다름을 감당하는 인내,
답을 고정하지 않는 선택.
보이지 않고,
소유할 수 없고,
붙잡을 수는 없지만
지난번 받았던 질문,
이제 분명히 답할 수 있다.
사랑은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끝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메리가 사라진 이유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의 사랑이란
메리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내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를 감당하며
그 이후를 각자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