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다.
원치 않는 상황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혹은 운명으로 생각하고 살기로 다짐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내적 충돌이 일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도 힘들지만 원치 않는 혹은 싫어하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유는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 봐도 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을 통하여 숙달되어 밥벌이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터트리는 시간을 가진 뒤 정말로 포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대안이 없다는 것을 완전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실상은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뚫고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며 그것이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오직 경험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런데 너무 쉽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지옥이 빨리 나름 괜찮은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제야 나의 지옥 같은 느낌은 관념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자의식이 너무 강하여, 현실에 굴복하고 싶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안에서 '포기해 소용없어 그럴수록 너의 삶만 더 불행해질 뿐이야'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포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 이상의 방황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을 때 자의식은 인생의 불행을 막고자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는 그것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고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진로에 대한 주도권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다. 그리고 매일 반복적으로 당연히 해야만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양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가령 매일 식사를 하기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매일 씻고, 청소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의 고통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였는데 그것에 대한 것도 마음을 비우면서 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실적이 높은 고능률 자들은 5년 15년 이상 이 일에 매진하며 감내해 온 이들이며 또한 나와 다르게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 기질과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며 나는 체력이 너무 약한 기질이다. 그래서 비교 불가라는 것이며 또한 비교 자체가 이미 불행하기 위한 시동을 거는 작업이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 역시 타인과 비교하면 자극받아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서 신경을 쓰며 비교하고 경쟁하고 하였지만 그것은 자극이 아니라 자괴감을 더할 뿐이었다. 그래서 내 목소리 내 일 외에 다른 사람들의 실적에 대하여 귀를 닫기로 했다. 내 일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실적은 더 잘 되는 일이 일어났다. 집중과 몰입을 했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이 차분하고 평온한 상태여서 상담이 더 잘 진행되기도 한 것이다.
나는 그로 인해 성서의 말씀이 나의 현실에서 정확히 진리라는 것을 느끼며 말할 수 없는 희열에 가득 찼다. 인생은 욕망으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욕망은 인생을 멈출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로 만들어 버리고 힘이 다 빠지고 병들어 가게 될 때쯤 이제 내려오라고 뒷방늙은이 취급을 하는 주범이다. 그래서 60대가 되면 인생이 말할 수 없이 허무해지는 것이다. 재물을 위해 성공을 위해 명예를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온 시간의 그 목적이 한 순간에 상실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게 맞는 것일까?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의욕이 상실되는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일상을 둘러쌌다. 이럴 때 성서에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신실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도 생각났다. 비어있는 공간에 채울 것은 성실과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
신을 믿는 것은 인간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좋은 방안으로 대처하는 것뿐이다. 누구는 운이라고 하고 누구는 신의 섭리라고 하는 그 수만은 변화무쌍한 일상은 인간이 해결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기, 질병, 취업, 이혼, 사고 등등...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대한 좋은 방안을 대처하는 일을 매일매일 반복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며, 겸허히 욕망으로 살지 않고 일상의 사람들과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것을 늘 물으며 현실과 조율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자유롭게 되었다. 아무것도 염려되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집착되지 않고 어떤 일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축복의 시대, 정신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인생, 영혼이 영원함을 누릴 수 있는 상태.
그 차원으로 나아갔을때 비로소 온전한 행복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고 확신했다. 생계와 정신적 집착, 죽음으로 부터의 공포,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함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