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지독한 현실 부정으로 인해 고뇌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은 이미 작가의 삶을 살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었고, 현실은 성향에 맞지 않는 일을 지속하는 것으로 인한 답답함으로, 수없이 많은 탑을 쌓았다가 다시 풀어 헤쳤다가를 반복하였다. 시간이 해결한다는 것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 세포에 각인되기까지, 한 번의 혹은 두 번의 홍역 같은 것을 치르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 저축한 돈으로 생활하면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작가 코스프레를 할 수도 있다. 다음은 어쩔 셈인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렇다고 아직 필력이 아마추어인 상태에서 어떤 기적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직장에 대한 고민도 수없이 들락날락했다. 다른 직장도 더 나은 곳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었고, 한 달 내내 이상하게 시험처럼 사건이 생겼다. 하루아침에 지옥을 와버린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답을 고민하는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자신에 대한 무지함으로 성향과 상극인 일을 어쩌다가 직업으로 삼고 살아버린 행동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직업 자체의 문제였다.
두번째는 유난히 사건이 많은 시점에서 스트레스가 증폭되었고,
세번째는 비수기의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더욱 나를 짓눌렀고,
네번째는 하루빨리 작가로서의 로망을 실현하고 싶은 조급증이 뒤엉켜 버린 것 같았다.
지금 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내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무조건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건에 따라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돈의 시작은 가장 먼저 마치 시험을 주시는 듯 매일 일어난 사건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사건은 시간이 지나가야 했다. 사건은 불가항력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생기면 이미 일어난 사건을 빨리 수습하고 처리하고 지나 보내야 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보내야 했다.
어리석게도 사건에 대하여 감정을 싣고, 억울함을 싣고, 불만을 심으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거의 하루를 넘게 사건에 생각에 뒤엉켜 매몰되어 버렸다. 빨리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더 이상 문제가 커지지 않게 수습해야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음을 얻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실적에 대한 압박감을 내려놓았다. 목표를 포기하려고 할 때 서퍼의 자세가 떠올랐다. 서퍼는 파도의 흐름을 탄다. 절대 자신이 파도를 인도하지 않는다. 파도가 약하면 약하게 흐름을 타고, 파도가 강하면 강하게 전진한다. 상황들은 파도의 흐름이다. 기다릴 때는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하고, 반응이 오면 거기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고민은 현실을 인정하고 실력을 쌓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이론으로는 쉽지만, 논리는 그게 맞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안에 전업 작가라는 삶을 살 수 있을까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쓴 최영미 작가가 생활고로 기본소득 신청을 했다는 정보를 접하고서야 나의 조급증은 가라앉았다.
그렇게 세 가지를 깨닫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에 평정심이 들어왔다. 이 세가지의 공통점은 수동적으로 포지션을 바꿨다는 것이다. 은퇴하거나 출간한 책들의 인세가 직장의 수입 정도를 다다를 때까지,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될 때까지 직장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생활 속의 고민과 통찰의 내용을 글로 써야 하는 시기이다.
또한 전업 작가가 되면 지금 삶의 현실들을 치열함과 고통은 사라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들밖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전업 작가들이 아니라 힘든 현실에 지치고 직장에 지친 이들이 위로와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신께서 주시는 지금 해야 할 일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인 것 같다. 모든 나의 기도가 선하진 않기에 모든 기도의 응답을 주시지 않으시지만, 늘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 기쁨을 많이 만났다. 이번에도 매일 같이 기도해 왔다. 그리고 결과는 간절히 원하는 데로 응답되지 않았다. 그것은 사도바울에게 주신 응답대로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는 말씀이었다.
이번 마음의 진통을 계기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나의 세포에 각인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과는 반드시 화합하라는 것이었고, 현실을 인정하면서 발전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성향과 맞지 않는 직업은 늘 내게 시련이 되겠지만, 나처럼 성향에 맞지 않는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나의 글은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글이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삶 속에서 인생의 많은 보이지 않는 교훈과 통찰을 만날 것이다. 성공보다는 성숙을 원하시는 신께서는 시련속에서 연단하여 고귀한 품성을 만들어 주고 싶으신 것이다.
행복은 때로 기쁨보다 고통 후에 온다. 그때서야 아! 이게 행복이었구나. 이것이 행복이구나. 라고 느껴지게 된다. 내 삶에 행복이 있는데 욕심과 조급함과 관점이 행복의 프레임이 아닌 불행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만족하며 사는 삶은 행복할까. 멈추는 것 또한 지루함과 반복된 생활의 매너리즘을 준다.
그래서 아주 흔한 말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 진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다 보면 발전은 온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