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지켜보다
열등감과 우월감을 죽이고 자신감을 갖기로 한 나는 감정이 어디로 흐르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또 나는 무엇인가 걱정할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고 있다. 준비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는 것에 대해 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형인 것 같다. 우리의 걱정 중 96%가 필요 없는 걱정을 한다고 하는데 나의 모습도 그와 같았다. 지금은 그나마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성과가 있는데, 나의 마음은 또 걱정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 즐거운 생각, 쓸데없는 고민
두 가지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과 즐거운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약속한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그 사람을 위해 작은 선물을 생각하는 것, 오늘 오후 동네 동생과 치맥을 하러 가기로 한 것이라든지, 아니면 브릿팝 음악을 들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는지 등등이다.
나는 지금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약 이 시간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면
'앞으로 시작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 또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잘못된 선택은 아닐까...'
등등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처럼 쓸데없는 고민으로 방향이 흐르지 않는 것을 느끼며 안도한다.
# 비움
너무 생각이 많아 과부하가 걸리거나 핵심을 놓치거나 배가 산으로 가버린 적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어쩔 때는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굳이 긍정적인 마음이 아닌 그냥 비어있는 시간도 좋다. 말하자면 아무 생각 없는 시간 말이다. 주로 기도할 때에 그런 시간을 갖지만 그 외에 시간에서도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강박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강박성은 아마도 향상성이 높은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면,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면 마음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많은 관계의 부딪힘과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은, 생각을 하지 않기가 사실 너무 어려울 때도 많다. 사건은 매일매일 일어나며 나의 능력은 늘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 만들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삶이 흐르지 않았고 그 시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지 않을 때였다. 정보의 홍수는 무엇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갖게 한다.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융합이라는 개념 속에서 모든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수박겉핡기 식으로 습득하다 보면 깊이 생각하는 철학, 인문, 사상에 대하여 들어가 보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게 된다. 사실 필요한 것은 너튜브나, 지식인에 다 있다. 오히려 거기에 없는 자신의 관점, 철학을 사색과 통찰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독보적인 정체성이 된다고 생각한다.
# 초라한 나를 예술로 만들기
우리의 국악이나 문화가 대게 촌스럽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70년대 감성의 매장이나 K-컬쳐는 너무나 멋지게 퓨전 국악, 국악을 섞은 음악이 히트를 치고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초라하다. 그러나 그 삶에 예술성을 투여하면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은 나의 삶이 아닌 전혀 다른 것에서 창조하려고 하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고 서양의 문화만을 선망하며 지냈던 시절처럼 말이다.
나는 나의 삶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모든 사람의 삶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내가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들이 온전히 되어있지 않으면 인생은 방황과 혼돈의 연속이 된다.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가 중심축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나에게 맞는 온도
나는 비어있는 것보다 조금 더 높은 온도를 원하는 것 같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또한 내 안에 있는 부분이다. 단지 그것을 자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삶의 전반적인 성향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메타인지를 적용해야 할 순간에 까지 무조건 유쾌하고 긍정적인 것은 곤란할 것이다. 다만 베이스의 성향이 그 성향을 가지고 가며, 하루를 분석해봐야 하는 순간에는 이성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 필사적으로 지금을 살기
그렇다. 나는 전혀 다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를 이제는 그만 회상하고, 미래도 너무 많은 상상을 하지 않고, 현재를 오롯이 살고 싶다. 지금을 살고 싶다. 항상 어디론가 가고만 있는 느낌을 이젠 갖기가 싫다.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늘 과거나 미래에 가 있었었다.
나의 많은 문제를 목도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는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며 가야 한다. 타인을 바꿀 수 없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리고 내가 바뀌었을 때 주변이 바뀐다. 주변이 바뀌는 것은 환경과 타인의 마음, 모든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었을 때 주변이 바뀌지 않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 그러나 과연 불공평한가
세상이 원래 계속 불공평 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결코 불공평 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현상되어 보일 뿐이다. 편안한 삶을 살아간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난을 겪지 않는다. 또한 고난을 통해 성숙한 사람은 좋은 인격으로 사람을 품는다. 많은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만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쉽지 않다. 또한 어느 조직에서건 리더가 되기 어렵다. 고난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까...
# 소모적인 고난을 피하기
삶은 고난을 통해서 삶의 깊은 법칙과 원리를 깨우치게 하였다. 50세에 들어서기 전 나는 이제 고난을 피하려 한다. 고난을 받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기도 했거니와 더 많은 고난은 나를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뇌는 성숙한 자의 행복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피하고 싶은 고난은 나의 무지로 인한 고난을 말한다. 소모적인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괴롭히는 관념들을 박살내기로 한 것이다. 열등감의 우월감, 걱정, 염려, 두려움, 불안 이런 것들이 없어도 나는 아주 잘 살 수 있다. 매일 메타인지 시스템을 작동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일상생활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반응하기로 하는 것이다.
# 의미있는 행복한 인생
행복을 주는 고난이 있다. 그것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고난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서 긴 상담을 할 때, 내가 많은 고민으로 인생의 어떤 단계를 뛰어넘을때, 봉사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힘이 들때,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을 쓰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어느 순간은 고난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인간은 숨쉬는 것과 쾌락말고 거의 모든 것을 고난으로 느끼는 것 같다. 그래도 그 고난은 행복이다. 그 고난은 즐겁고 기쁠 수 있다. 고난이 의미있고 가치있다면 말이다. 생계를 유지해주는 직업은 가장 소중하다고 내게 다시 말한다. 뿌뜻하고 보람있는 기쁨은 고난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